같은 병실에서 만난 임신부 아나(밀레나 스밋)는 너무 어린 나이에 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이 두렵기만 하다. 큰언니 격인 야니스는 초면의 아나를 달래주고 연락처도 주고받는다.
정작 일상으로 돌아와 예상치 못한 혼란에 빠진 건 야니스다. 친부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잘드)가 지나치게 이국적인 아이 외모를 보고 친자 검사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생각에도 뭔가 이상했던지, 야니스는 ‘친모 검사’를 진행하고 자신이 생모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불현듯 같은 날 출산했던 아나가 떠오른다.
야니스는 진실 앞에서 망설인다. 아나가 데려간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걸 비밀에 부친 야니스는 홀몸이 된 아나를 자신의 입주 베이비시터로 고용해 일단 함께 지내보기로 한다.
전말을 모르는 아나가 한 집에 사는 야니스를 향한 오묘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면서, 이야기는 멜로인 동시에 진실을 감춘 한 편의 스릴러로 탄탄한 전개를 선보인다.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스페인 출신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연출했다. 원색의 화사함을 강렬하게 배치하는 색채 연출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여성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패러렐 마더스’는 전통적인 모성을 이야기하거나 현실 반영적인 어려움을 토로하지는 않는다. 두 싱글맘 모두 경제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은 캐릭터로 설정하면서 ‘여성 삶의 고통’보다는 ‘여성이 주도하는 삶과 진실’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이 전개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서브플롯과 오묘하게 맞물리면서 더욱 각별해진다.
야니스가 고민하는 건 아나에게 진실을 말하고 순리대로 아이를 생모에게 돌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감춘 채 자기 삶의 안정을 택할지다.
그의 선택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 기억하는 일과도 연관돼 있다. 야니스는 스페인 내전으로 돌아가신 증조부의 유해를 발굴해 제대로 된 곳에 모시려는 활동에 오랫동안 몰두해왔다. 임신을 하게 된 것도 그 작업을 도와주던 법의학자 아르투로와의 인연 때문이다.
야니스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기억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인 아나에게 쓴소리를 내뱉기도 하는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지점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손꼽았다.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AFI(American Film Institute) 대담에 참석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네가 사는 곳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매우 단호하게 말하던 야니스는 그 순간 자기 말의 모순을 깨닫고 아나에게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한다. 야니스의 도덕적 딜레마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감독이 말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능숙하게 표현해낸 건 야니스 역을 맡아 연기한 페넬로페 크루즈다. 두 사람은 ‘라이브 플래쉬’(1997),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귀향’(2006), ‘브로큰 임브레이스’(2009), ‘아임 소 익사이티드’(2013), ‘페인 앤 글로리’(2019)로 끊임없이 합을 맞춰왔다. 신작 ‘패러렐 마더스’를 통해서는 두 엄마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범한 사건 안에서 역사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인 성찰을 끌어낸다. 러닝타임 123분, 31일(목)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