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여유로 다가와 날 부르는 그대. 오~트라이”
다들 기억하시나요? 배우 이덕화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안타깝게 내려치며 ‘트라이’를 외치던 그 광고 말입니다. 한 편의 영화와 같았던 이 광고로 쌍방울은 단번에 업계 선두 자리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속옷 회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쌍방울이 최근에는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쌍용자동차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인데요. 속옷회사로만 알려졌던 쌍방울이 완성차 업체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런데 쌍방울은 그간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 반도체기업 미래산업 등을 인수하며 M&A 시장의 큰손으로 활약해왔습니다. 과연 쌍방울이 쌍용차 인수전에서 웃을 수 있을지, 인수에 성공한다면 속옷회사인 쌍방울과 완성차 업체인 쌍용차가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최근 쌍방울그룹이 쌍용차 인수에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 쌍방울그룹은 임원을 포함해 10여 명으로 구성된 쌍용차 인수 태스크포스(TF)도 꾸렸습니다. 구성된 TF는 쌍용차 인수를 위한 자금 조달과 컨소시엄 구성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쌍방울그룹 측은 쌍용차 인수를 위해 발 빠르게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이하 에디슨) 측과도 접촉한 상태입니다. (관련기사 [단독] 쌍방울 그룹, 쌍용차 인수 속도전…오늘 에디슨모터스 만난다)
속옷회사인 쌍방울그룹이 완성차 업체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입니다. 쌍방울그룹의 전신은 이봉녕·이창녕 두 형제가 양말 도매상으로 출발한 ‘형제상회’로 속옷 사업을 주로 영위해왔습니다. 쌍방울이란 이름도 이 씨 형제를 의미하는 '쌍(雙)'자와 이름 끝 자인 '녕(寧)'자를 조합한 것에서 나왔습니다.
쌍방울이 크게 성장한 것은 1987년 선보인 대표 브랜드인 ‘트라이’를 통해서입니다. 아직도 국민들에게 ‘쌍방울=트라이’로 인식되고 있죠.
그러나 쌍방울그룹이 속옷사업 만을 영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죠. 2016년 카메라모듈 제조사 나노스를 시작으로 △2019년 속옷회사 비비안 △2020년 반도체 장비 제조사 미래산업 △소프트웨어 유통업체 인피니티엔티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를 인수했습니다.
이번 인수와 관련해서도 특장차를 제조하는 계열사 광림을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입니다. 광림의 지난해 매출액은 1884억 원으로 쌍방울그룹 전체 매출 약 6000억 원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쌍방울그룹은 광림이 쌍용차를 인수할 경우 특장차 생산과 개조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이를 통해 제작 기간을 줄여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자금력’입니다. 인수 본계약까지 체결했던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이하 에디슨모터스)이 쌍용차 인수를 포기한 것도 자금 때문이었습니다. 정해진 기한 내에 2700억여 원의 인수 대금을 납입하지 못했던 것이죠.
지난해 10월 20일 쌍용차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에디슨모터스는 지난 1월 10일 3048억 원의 인수대금 지급을 조건으로 쌍용차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에디슨모터스는 3월 25일로 예정됐던 쌍용차 인수대금 잔금 납입 기한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 약속했던 운영자금 500억 원 가운데 300억 원만 지급했고, 200억 원은 지급하지 못했죠.
애초 에디슨모터스는 FI(재무적 투자자) 유치를 통해 인수자금을 마련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입찰 당시 참여했던 사모펀드 키스톤PE와 KCGI가 최종적으로 투자에서 손을 떼면서 자금 마련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쌍방울그룹은 자금 마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광림 컨소시엄’을 꾸리고 이스타항공 인수전에 참여한 바 있는데, 이때 마련한 자금을 쌍용차에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쌍방울그룹은 약 1000억 원을 마련하고 이스타항공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중견 건설사 (주)성정에 밀린 바 있습니다.
쌍방울그룹은 이때 확보한 1000억 원에 추가로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다른 계열사들이 참여할 경우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도 제기합니다. 과거 쌍방울그룹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쓴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죠. 과거 무주리조트 개발사업을 진행한 쌍방울그룹은 과도한 확장으로 인한 부채로 부도 처리된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외환 위기 등 악재가 닥치기는 했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자신의 저서 <불황의 경제학>에서 아시아 외환 위기를 설명할 때 사례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3000억 원을 들여 쌍용차를 인수하더라도 정상화를 위해서는 1조 원가량의 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쌍용차는 지난해에도 연결 기준 2613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2017년부터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