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만 연간 10억 원이다. 무슨 수로 갚겠나.”
올해 1월 취임한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위원장이 4일 줌으로 이투데이와 만나 이같이 호소했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예산 800억 원을 차입한 걸 두고 한 말이다.
영화산업 호황기이던 2019년 대비 지난해 극장 매출은 5845억 원으로 70%까지 급감했다. 영화표 판매값의 3%를 떼어낸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으로 사업을 운영하던 영진위 운영방식에도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영진위 내부에서도 상황이 급격히 호전되기 어렵다고 보는 분위기다. 향후 5년간 징수할 수 있는 영발기금을 연간 100~200억 수준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는 2019년 역대 최고 예산이었던 1015억 원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지금까지의 영화진흥정책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박 위원장은 인수위와 문체부를 대상으로 2023년도 영화진흥정책을 위한 국고지원을 요청 중이라면서 “새 정부에서 영화산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결심해 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적체된 한국 상업영화 개봉을 두고는 “마치 동맥경화 현상같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영화계에서는 영진위에 2000억 원 규모의 ‘개봉촉진기금’ 조성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극장, 배급사, 제작사가 최소한 손해라도 면하게 해주려면 적어도 편당 10억 원 이상은 지원돼야 한다. 개봉하지 못한 영화가 100편이라고 보면 1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위원회 차원에서 결정할 수 없는 큰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급 기관인 문체부에도 스포츠토토로 조성한 상당한 액수의 국민체육진흥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 중"이라고 전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2조(기금의 사용 등)에 따르면 ‘문화예술 진흥을 위하여 특별히 지원이 필요한 사업’에 기금을 쓸 수 있다.
긴축 재정을 통한 자구책도 마련 중이다. 우선 지난 3년 동안 연간 300억 원씩 지출했던 한국영화 모태펀드 영화계정 출자 규모를 줄일 예정이다. 각종 지원정책도 긴축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박 위원장은 “그래야 정부에 국고지원을 이야기할 때 설득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영발기금에 한정됐던 재원을 박 위원장 계획대로 다각화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영진위 지원정책 대상도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발기금을 낸 주체를 우선으로 지원정책을 펼친다'는 그간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서다.
조직 내부에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빨리 끌어안고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실제 위원회 복도에는 직원들이 만들어 붙여놓은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오징어 게임’은 OTT콘텐츠인가 영화인가.'
박 위원장은 영진위 내부에서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게 “현실”이라면서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이해관계자들의 추가적인 의견 수렴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 '신뢰와 존중’을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영진위가 컨트롤타워가 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며 "위기대응 능력뿐만 아니라 영화가 앞으로 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패스파인더'(pathfinder)’ 역할까지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기 동안 영진위가 한국 영화계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