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가치 단숨에 6억5000만 달러 불어나
수년간 이렇다 할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두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이하 버크셔) 회장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는 개인용컴퓨터(PC)·프린터 제조업체 HP다.
7일(현지시간) CNBC 등은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가 HP의 주식을 대거 취득해 최대주주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버크셔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회사는 HP 주식 약 1억2100만 주(약 11%)를 사들였다. 전날인 6일 종가 기준으로 이는 약 42억 달러(약 5조1400억 원)어치다.
이로써 HP는 버크셔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애플에 이어 두 번째로 지분을 많이 보유한 기술기업이 됐다. 버크셔는 현재 1500억 달러어치의 애플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 버핏의 투자 소식에 HP의 주가는 단숨에 전 거래일보다 14.77% 상승한 40.06달러로 마감했다. 주가 급등에 버크셔가 보유한 HP 지분 가치는 42억 달러에서 48억5000만 달러로 늘어나면서 버핏은 단숨에 6억5000만 달러를 벌게 됐다.
시장은 버핏이 이번에 HP에 투자한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HP는 한때 PC 시장을 선도하는 정보기술(IT) 업체였으나, 스마트폰·태블릿 등으로 기기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10년 넘게 IT 업계의 2군 기업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HP가 지난달 말 통신 장비 제조사인 폴리를 약 17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이후 버핏이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폴리는 헤드셋, 회의용 전화기 등 하드웨어 제조업체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에는 게이밍 기기 제조업체 하이퍼엑스(HyperX)를 4억2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WSJ은 버핏 회장이 HP의 사업 다각화 노력과 하드웨어 기기의 강세에 베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애플과 달리 HP를 가치주로 판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CNBC에 따르면 애플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7배로 S&P500지수의 21배를 넘어선다. 반면 HP의 PER은 약 8배 정도다. PER이 낮을수록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HP를 비롯한 PC 제조사들은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급부상에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기간 노트북과 데스크톱 판매가 급증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PC 수요가 정점을 지나 내년부터 급격히 둔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HP는 매출의 3분의 2를 PC 부문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 애널리스트는 "HP는 애플의 아이클라우드(iCloud)와 애플케어와 같이 하드웨어 관련 고마진 수익 창출 성장 모델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WSJ은 곧 버크셔가 애플 투자의 대성공에도 기술 산업에서 '하드웨어는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투자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핏은 최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다양한 기업들의 주식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시장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버크셔는 지난달 미국 보험사 앨러게이니를 116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6년 만에 최대 인수·합병(M&A)에 나섰다. 또한, 에너지 기업 옥시덴털 피트롤리엄의 주식도 꾸준히 매입, 보유 주식을 지분의 13%가 넘는 72억 달러어치까지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