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통위, 14일 기준금리 0.25%p 올려
10년 만에 4%대에 진입한 국내 소비자물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예상보다 강한 긴축(빅스텝) 등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총재 공석과 경기 침체 우려 등을 이유로 동결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치솟는 물가를 내버려 두기 어렵다고 금통위원들은 판단했다.
2020년 3월 16일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을 단행했다. 같은 해 5월 추가 인하(0.75%→0.5%)를 통해 2개월 만에 0.75%포인트(p)나 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이후 기준금리는 같은 해 7, 8, 10, 11월과 작년 1, 2, 4, 5, 7월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15개월 만인 8월 0.25%포인트 인상됐고, 10월 동결로 '숨 고르기'를 했다. 이후 11월과 올해 1월 0.25%포인트씩 두 차례 잇따라 추가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2월 동결 결정으로 한 차례 쉬어간 후, 다시 인상에 돌입했다.
이주열 전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1.50%, 앞으로 한 차례 올리는 것을 긴축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는 한국은행의 확실한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통위가 총재 부재,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경기 하강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추가 인상을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 최근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내버려 두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내 물가 상승세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년 만에 4%대를 기록했다. 이런 물가 급등세가 단기간에 진정되기도 어렵다.
한은은 지난 5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유, 곡물 등 원자재가격 상승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4%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연간 상승률도 한은의 기존 전망치(3.1%)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오전 발표한 지난달 수입물가지수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국내 물가 상승 압력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중 유동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2월 중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662조6000억 원이다. M2 증가율은 2017년 9월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3000조 원 돌파 이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3600조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3660조 원을 넘겼다.
문제는 늘어난 시중 유동성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그간 시중에 풀린 돈이 금융 불균형을 키우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자극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물가지표가 약 10년 만에 4%를 웃돌며 인플레이션 부담감이 확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연준의 이른바 '빅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금통위 결정의 배경이다.
이날 금통위 회의 이전까지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0.75∼1.00%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예상대로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고, 이후 몇 차례만 0.25%포인트 또는 0.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높여도 수개월 사이 미국이 더 높은 상태로 역전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 수준이 미국과 같거나 높더라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과 급격한 원화가치 하락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금통위로서는 지난해 8월 미국 등 주요 선진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다시 격차를 미리 더 벌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0.25%포인트 인상으로 일단 미국 연준 기준금리(0.25∼0.50%)와 격차는 1.00∼1.25%포인트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