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만 쓰레기야?
화면 가득 나오는 내용이 ‘재연’이 아닌 ‘실제’라는 사실에 멍해진다면 초 꼰대, 초 보수적, 초 고릿적 마인드의 사람일까요? 나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찔한 현재를 마주하는 기분인데요.
10대에 부모가 된 고등학생부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던 이혼 부부의 부부싸움(?)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TV 방송을 통해 말이죠.
TV를 통해 본 10대들의 출산은 대부분 어두운 배경과 어두운 음악, 더 어두운 사연들이 가득했는데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또 출산 사실이 너무나 두려운 10대들이 이를 회피하거나 아기를 ‘베이비 박스’ 등에 맡기면서 안타까운 실태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대부분이었죠. 아니면 사회면 곳곳 ‘복도에 버려진 신생아’, ‘탯줄이 달린 채 봉투에서 발견된 신생아’라는 가슴 아픈 사연의 제목으로 맞닥뜨려왔는데요.
사뭇 다른 화면과 구성으로 시청자들 앞에 선 10대 출산 이야기.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이하 고딩엄빠)’가 화제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 화제가 결코 ‘긍정적’이진 않은데요. 10대 부모의 사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직접 출연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이 시선들로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부터 10대 부모를 공개적으로 방송에 노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불편함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죠.
하지만 그동안 음지로 치부됐던 10대 부모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응원을 보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지 않고 책임감만 강조했던 그간의 모습들을 비판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어른들의 무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고딩엄빠’ 제작진은 기획의도를 통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10대 부부들의 리얼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성장하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취지라고 밝혔죠. 어딘가 몰래 숨어지내는 미혼모·어린 엄마가 아닌 양육과 가정생활 모두 헤쳐나가는 이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는데요.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출연한 10대 엄마들은 스튜디오에 나와 이성 교제, 임신, 출산, 양육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얼굴을 가리지도 목소리 변조를 하지도 않고 말이죠. 환한 스튜디오 조명 아래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방송에서 고딩엄빠는 자신이 출산하고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실제 일상이 담긴 화면을 보며 MC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현실에 조언도 구했는데요. 이들을 향한 인식 전환의 기대도 따라왔죠.
TV조선의 ‘우리 이혼했어요2(이하 우이혼2)’도 꽤 자극적인 소재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시즌 1’에서는 아이와 함께 만나기도 하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부부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헤어졌던 사연과 함께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고, 아이 양육권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나눴죠.
그런데 ‘우이혼2’는 시작부터 사뭇 다른데요. 고성이 오가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이 난무합니다. 이혼 후 처음 만난 일라이와 지연수의 모습이죠. “너희 집에서 난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나는 그걸 믿지 못하겠다”며 서로의 날 선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데요. 이렇게 감정이 극에 달아있는 전 부부가 굳이 만나 서로의 서운함을 꺼내놓고 있는지, 그들의 방송에 의문을 보내게 되죠. 결국 “방송 소재로 이용한 것이 아니냐”, “출연료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인데요. 15일 방송 예고편에서는 이들이 서로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관계 개선의 의지가 보인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작은 이유가 되어줍니다.
이들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 속,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먼저 터져 나왔습니다. ‘가정폭력’ 논란이 불거진 건데요. ‘고딩엄빠’에 출연한 남성 A 씨가 부인인 19세 아기 엄마 B 씨를 가해자로 지목했죠. A 씨는 B 씨의 접근금지 명령 판결문을 SNS에 올리며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는데요. A 씨는 “아내가 저와 아기에게 물을 뿌리고 칼을 가지고 와서 ‘아기 죽여버릴까’라고 말했다”며 “내가 아기를 지킬 거라고 했더니 ‘그럼 다 죽여 버릴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사건 이후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진 거죠.
‘고딩엄빠’ 제작진 측은 두 사람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 후에 누구의 편에 치우치지 않고 원만한 해결을 하고자 노력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이후 부부상담가와 함께 정신과 내방을 진행한 결과 두 사람 모두 산후우울증뿐 아니라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결과를 받았다고 전했죠. 제작진 측은 관련 기관과 함께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 안전, 건강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겠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죠. 또 다른 ‘고딩엄빠’ 출연진 논란이 불거졌는데요. 아기 아빠의 폭력으로 잠시 아기를 다른 곳에 맡겼다는 출연진 C 씨. 그의 안타까운 사연과 전혀 다른 폭로글이 공개됐습니다. C 씨가 사실 전혀 다른 이유로 아기와 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죠.
‘고딩엄빠’ 게시판에 올라온 폭로글을 보면 C 씨는 아이를 작성자에게 맡기고 돌아오겠다는 약속 시각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는데요. 거기다 아기를 집에 혼자 두고 놀러 나간 사실을 알고 작성자가 부리나케 C 씨 집에 도착하자 아기는 불 꺼진 방안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고 전했죠. 아기의 기저귀는 넘치다 못해 터졌고, 작성자가 이를 달래고 뒤처리를 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전화상으로 아기도 꼴 보기 싫고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하죠. 놀란 작성자는 경찰에 신고했고, 보호자 없이 아기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한 경찰이 아기를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인계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폭로글이 사실이라면 C 씨와 아기가 떨어진 사연이 방송 내용과는 전혀 다른 건데요. 해당 폭로글 이후 제작진과 C 씨를 향한 해명 요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해당 폭로글이 사실이 아닐 경우 일반인 출연자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이 사태 또한 프로그램의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죠.
‘고딩엄빠’의 생각지도 못한 만남과 ‘우이혼2’의 굳이 마주한 날 선 만남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을까요? 우려의 목소리도, 안타까운 마음도, 부정적인 눈길도, 지켜보는 응원도 모두 이 프로그램에 쏟아지는 솔직한 반응이죠. 나름의 생각과 이유로 방송을 시청하는 이 시간이 부디 더 나은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