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보장 '법원은 저 뒤에'

입력 2022-04-19 17:2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장애인차별금지법 처벌 사례 거의 없어
장애인 관련 형사사법 통계 부족…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권리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삭발 투쟁 시위가 열린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에 앞서 사다리를 목에 걸고 있다. (뉴시스)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지정된 지 40년이 흘렀지만 장애인의 기본권은 많은 영역에서 아직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동권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의 '2020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로 목표치와 비교해 달성률은 66.1% 수준에 그친다. 장애인콜택시도 마찬가지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에서 규정한 기준의 83.4%만 실제 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19일 서울지하철 3호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중단했던 출근길 시위를 재개했다.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별개로 전장연 시위는 출근길 시민에게 불편함을 준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장애인 이동권 보호 어려운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 이동권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도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이동권을 규정하고 처벌규정을 둔 대표적 법률이다.

하지만 해당 법을 적용해 장애인 이동권을 침해한 교통사업자나 행정기관을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악의적 차별임이 인정될 때만 형사처벌이 가능해 검사가 입증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는 드물고, 특히 이동권으로 처벌까지 간 사례는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도 "악의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경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위반으로) 입건 자체를 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다른 법률로는 교통약자법이 있다. 하지만 시정 명령을 지키지 않은 교통사업자에 대해 벌금형을 내리는 데 그친다.

물론 처벌이 이뤄진다고 장애인 이동권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돼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수위가 낮은 게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법원 내 장애인 이동권 관련 통계도 부족

▲광주 장애인철폐연대 등 지역 장애인·인권 20개 단체 회원들이 '장애인의 날' 40주년인 20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앞서 이들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북구 시 교통문화연수원에서 시청까지 5개 저상버스 노선을 이용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뉴시스)

법원이 매해 발행하는 사법연감을 보면 장애인과 관련해 통계가 작성된 죄명은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세 가지가 전부다. 이들 법을 위반한 사건의 절반 정도에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벌금형이 그 뒤를 이었다. 그마저도 관련 통계는 2020년에 발표된 것이 가장 최신이다. 사법연감은 해당 죄명으로 접수된 사건 수와 선고된 형량을 분류한 보고서다.

2020년 사법연감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사례는 없다. 법원에 접수된 사건 자체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분류기준이라고 여겨지지 않아서였을 가능성도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통계의 유무를 묻는 질문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사법연감에 나오지 않는 통계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법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자료 외에 새로 가공·추출해서 통계를 작성해 드리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대법원은 3월 김 모씨 등 3명이 대한민국과 서울시·경기도·금호고속·명성운수를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소송에서 원고 승소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외버스노선에 저상버스·휠체어 탑승설비 등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데 정부와 버스회사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결정이었다. 대법원은 "김 씨 등 3명의 거주지와 직장 소재지를 고려할 때 향후 피고(버스회사)가 운행하는 모든 노선의 버스에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변호사는 "물론 대법원도 장애인 이동권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비장애인은 원하는 대로 서울에서 부산 등을 이동할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자주 이용하는 구간을 입증해서 거기에 한해 차별을 구제해주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집단소송이나 특정 장애 유형을 대표하는 사람의 단체소송이 허용되지 않아 원고는 개별 장애인일 수밖에 없다"며 "개별 장애인이 모든 버스노선을 다 이용한다고 볼 수 없는데 회사가 운행하는 모든 버스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설치 의무를 넓게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결정은 아쉽다"고 말했다. 개별 장애인만 보면 전체 장애인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데 이를 법원이 고려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취지다.

장애인 입장에서 봐야…'실천'이 중요

이 변호사는 "정부가 5년 단위로 이동 편의 증진계획을 세워야 되지만 잘 하지 않고, 세워도 달성하려는 노력이 불충분하다"며 "정부의 계획도 충족이 되지 않고 자구책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형사재판의 악의성이나 민사소송의 고의과실 등을 판단할 때 피해자 장애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법에 근거가 있어도 예산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며 "법도 법이지만 예산을 충분히 써서 저상버스 도입률을 100%로 만들고 설비 투자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동권은 먹고사는 문제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며 "시혜적으로 장애인 이동권 정책을 몇 퍼센트 했다고 자랑하는 것 자체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