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법안 처리를 위해 위장 탈당까지 한 건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민주당이 민 의원을 무소속 의원으로 만든 배경에는 ‘안건조정위원회’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안건조정위가 대체 뭐길래 소속 의원을 탈당까지 시킨 걸까요?
안건조정위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 각 상임위원회에서 구성하는 위원회입니다. 쟁점 법안을 숙의(熟議)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죠.
안건조정위는 2012년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의 일부로 도입됐습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상임위에서 이견 조정 필요성이 있을 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구성되며 최대 90일 동안 활동할 수 있습니다. 조정위원의 정원은 6명이며 여야 3명씩 구성됩니다. 조정위원장은 관례상 최고령자가 맡으며, 조정위원은 위원장이 소속 위원 중에서 간사와 협의해 선임합니다.
만약 안건조정위에서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 즉 4명 이상의 찬성으로 안건이 의결되면 소위원회 심사를 생략하고 곧장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할 수 있습니다. 조정안이 의결되면 활동 기간이 남았더라도 그 활동이 종료됩니다.
그런데 이 안건조정위가 21대 국회에서는 법안 신속 처리용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이나 민주당의 위성 정당으로 불린 열린민주당 의원을 야당 몫 조정위원으로 앉혀 4대2 구조를 만들어 조정안을 통과시킨 식이죠. 지난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조정위에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탄소중립기본법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됐습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습니다. 검수완박은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하는데요. 검찰의 6대범죄 수사권을 경찰 또는 다른 수사기관으로 이전해 수사와 기소권을 분리하자는 게 골자입니다.
이 법안이 나온 취지는 선진국처럼 경찰은 수사를 하고 검찰은 기소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모두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검사가 경찰의 보완 수사 요구도 하지 못 하게 되고, 스스로 증거 수집도 못 하게 돼 자칫 범죄에 관한 처벌이 더뎌질 수 있습니다. 대신에 검찰이 불필요한 수사를 하면서 권한을 남용하는 일은 줄어들겠죠. 민주당은 이달 안에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당론을 정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시한을 넘기게 되면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등장한 게 안건조정위입니다. 법사위는 검수완박 법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하기로 했습니다. 여야 이견이 큰 안건인 만큼 ‘숙의’를 통해 통과시키겠다는 것이죠.
법사위는 얼마 전까지 민주당 12명, 국민의힘 6명으로 구성돼 있었는데요. 만약 이 상태에서 안건조정위가 구성될 경우에는 민주당 3명, 국민의힘 3명이 조정위원으로 선임됐을 겁니다. 이대로라면 국민의힘은 조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정권교체 이후까지 법안을 묶어둘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정권교체를 앞둔 민주당은 다급한 모양새입니다. 이달 내에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사보임’을 단행했습니다. 사보임은 사임(辭任)과 보임(補任)을 합친 말로, 상임위 위원을 교체하는 걸 말합니다. 민주당은 같은 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 동의를 받아 원래 법사위 소속이었던 박성준 의원을 빼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투입했습니다. 민주당 출신인 양 의원을 야당 몫 조정위원 자리에 앉히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민주당의 계획이 갑자기 꼬이기 시작합니다. 양 의원의 ‘폭탄선언’ 때문이죠. 19일 양 의원이 작성한 검수완박 입법 반대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해당 입장문에서 양 의원은 “나는 문재인 대통령 영입 인사로, 누구보다 문 대통령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검수완박 법안이 이런 식으로 추진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검수완박 법안 졸속처리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그러자 민주당은 다음날인 20일 부랴부랴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켰습니다. 양 의원을 대신해 민 의원을 법사위 안건조정위 야당 몫으로 투입하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더라도 4대2로 법안을 강행 처리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든 것이죠. 민주당은 같은날 안건조정위 회부를 요구하며 검수완박 법안 의결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당의 이런 꼼수 행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셉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또다시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키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범진보 진영인 정의당의 장태수 대변인은 이번 사태를 ‘대국회 민주주의 테러’로 규정하며 “국회의 시간과 국회의 민주주의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습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정치해서는 안 된다. 고민이 있었겠지만, 정치를 희화화하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고, 같은 당 박용진 의원 역시 “민 의원의 탈당은 묘수가 아닌 꼼수”라고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역시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료하려면 재적의원 5분의 3인 180명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172석을 가진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의석 확보 실패를 대비해 ‘회기 쪼개기’ 전략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임시국회 회기를 30일이 아닌 2~3일 단위로 짧게 쪼개는 것입니다. 국회법상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는 강제로 종결되고, 안건은 다음 회기에 자동 상정됩니다. 회기 변경은 국회의장의 직권입니다.
검수완박에 대한 의견은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숙의를 위해 만들어진 안건조정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과연 민주당의 검수완박은 실현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