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실각 후 필리핀 떠났다가 귀국
두테르테 현 대통령 손잡고 대선서 압도적 승리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르코스 후보는 개표율 93.8% 기준 2990만 표를 얻어 사실상 대통령 당선을 확정했다. 과반 기준인 2750만 표를 여유 있게 넘겼을뿐더러 경쟁 후보였던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과의 격차는 두 배 이상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64세인 마르코스 후보는 아버지이자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외동아들이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을 이끈 인물로, 계엄령 선포 후 수천 명의 시민을 살해하는 독재 정치와 함께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개인 자금으로 빼돌린 부정부패 혐의로 1986년 실각했다. 필리핀 정부에 따르면 당시 그는 50억~100억 달러의 자금을 은닉했지만, 2020년까지 회수된 금액은 30억 달러(약 3조8300억 원)에 그친다.
실각 후 부모와 함께 필리핀을 떠난 마르코스 후보는 199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1995년 상원 경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의원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6년 부통령 경선에 나선 그는 현 부통령인 로브레도에게 밀려 떨어졌지만, 이번에 다시 맞붙어 완벽한 복수를 했다. ‘봉봉’이라는 애칭을 전면에 내세워 소셜미디어에서 젊은 유권자를 공략한 효과가 있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마르코스 후보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는 집권당 PDP라반 소속으로, 일각에선 두테르테 대통령이 퇴임 후 기소될 것을 우려해 그를 적극적으로 밀어줬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 당시 마약사범들을 대거 살해했다는 혐의와 부정부패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평소 높은 지지층을 보유하던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 사라 다바오까지 그의 러닝메이트로 나서면서 도움을 줬다. 부통령 후보로 나온 사라 후보 역시 당선이 굳어졌다.
마르코스 후보는 중국과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을 강화했던 두테르테 정권처럼 대중 관계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긴장 상태를 이어온 현 정권과 달리 미국과도 협력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올 초 그는 한 포럼에서 “미국과 필리핀은 특별한 관계이며, 미국은 필리핀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