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은 ‘수사력 부족’ 논란으로 비판의 대상이 됐던 공수처를 ‘신설 축구팀’이라고 비유했다. 탄생한 지 1년이 막 지난 신생기관으로서 아직 역량이 부족하고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처장은 공수처 인력난을 거론하며 직원 숫자를 세 자리 수로 늘려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김 처장은 16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현재 공수처는 사건의 접수와 처리는 물론이고 예산·회계, 국회·언론 관련, 인사나 법제, 행정심판, 감찰 등 독립된 행정기관으로서의 모든 업무를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상 정원 제한 때문에 극히 적은 인원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검사 총 25명, 수사관 총 40명, 일반직원 총 20명으로 정원이 너무 적게 법에 명시된 관계로 인력 부족 문제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처장은 이어진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 “저는 내부 직원들에게 ‘우리는 신설 축구팀’이라는 비유를 한다”며 “잘하는 선수들이 여기저기서 모였는데 팀워크가 문제”라고 했다. 김 처장은 “공수처장은 감독, 차장은 코치다. 구단주는 국민으로 공수처는 구단주를 보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처장은 공수처 내부의 인력 부족이나 청사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며 “국회에서도 공수처 설치 법안을 만들고 나서 문제점이 있었으면 지난 1년동안 A/S를 해줬어야 했던 것 아닌가”라며 “다른 기관은 대변인실에 직원이 20명인데, 우리는 (처‧차장과 검사를 제외한) 직원 전체가 20명인데 이 인원으로 모든 걸 다 하고 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고 비현실적이고 이런 게 바로 ‘독소조항’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윤석열 정부가 폐지 가능성을 밝힌 ‘공수처법 24조 1항’과 관련해 김 처장은 “요건에 맞게 정당하게 행사할 것”이라며 “24조 1항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우려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법 24조 1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인지한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와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청권을 규정하고 있다. 다른 수사기관보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의 범죄 수사권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공수처의 존재 의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이를 ‘우월적 권한으로 권력 비리를 은폐할 수 있다’며 독소조항으로 명시하고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김 처장은 ‘공수처 1호 사건’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해직교사 특별교사 채용 사건을 거론했다. 해당 사건은 공수처의 공소심의위원회가 기소를 권고했고 공수처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기소했다.
김 처장은 “감사원은 지난해 4월 23일 조 교육감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수사 의뢰를 했고, 같은 날 국가수사본부는 국가공무원법으로 고발했다”며 “한 피의자에 두 기관이 다른 법률을 적용한 사건인데 (감사원 또는 국수본이) 공수처와 함께, 두 기관이 함께 수사를 하는 것은 인권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기관이 몰아서 수사를 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김 처장은 ‘공수처법 24조1항’을 견제할 수 있는 내부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다른 기관에서) 수사가 거의 이뤄져서 공수처는 사건 (수사 없이) 처분만 해도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수사진행정도에 따라 때로는 ‘공 가로채기’가 될 수 있다”며 “몇 가지 세부적인 기준과 절차를 합리적인 선에서 도출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할 때 반드시 기구가 심의해 의견을 내게끔 하거나 공수처장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한 사건에 대해 반드시 보고하도록 할 수 있다”며 “국회에서 검증할 수 있게 통제방안을 마련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사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하기 전에 검찰‧경찰과 사전 협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처장은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검수단축(검찰 수사권 단계적 축소)’이라고 표현했다. 최종 통과된 법안은 당초 발의된 검수완박 법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김 처장은 “마지막 공포된 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권 단계적 축소와 수사‧기소 분리’가 정확하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검찰과 공수처의 ‘비대칭성’을 검수완박 법안의 ‘맹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범죄만 수사할 수 있는데 이번 소위 ‘검수완박’ 법 개정으로 검찰은 공수처와 경찰 직원 모두를 수사할 수 있다”며 “이런 게 여론의 주목을 못 받았는데 상당한 맹점이다. 앞으로 공수처법이 논의될 때 환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수처는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을 표방하고 있다. ‘공직자를 상대로 수사를 하는데 왜 인권친화적 기관이 표어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김 처장은 “힘 있는 사람이 처벌을 안 받고 피해갔는데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서 수사가 되겠는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며 “국민 감정과 잘 안 맞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제2의 검찰이 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들면 의미 없다”고 했다. 이어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특혜를 줘서도 안 되지만 포토라인에 세워서 망신을 주는 등 불이익을 줘서도 안된다”며 “공수처는 검찰‧경찰과 다른, 조금 더 인권친화적으로 애쓰는 선진적 수사기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공수처의 정상화’를 내걸며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공수처 24조’ 폐지를 내걸며 공수처의 입지를 흔들었다. ‘윤석열 정부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김 처장은 “공수처는 1996년부터 시작된 권력정부비리, 고위공직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는 시대과제를 안고 탄생했다”며 “공수처는 어느 정당, 정파, 진영의 산물이 아니고 어느 진영에서 추진했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공수처가 돼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바뀌었는데 정부가 새로 바뀌든 여야가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이 공수처의 사명으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 공정하게 수사해야 하며 공수처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이라며 “일관되고 공정한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고 윤석열 정부에도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지난해 언론인과 정치인, 민간인 등을 대상으로 대규모 ‘통신자료 조회’를 실시해 논란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김 처장은 “언론의 자유침해 우려가 있다. 일부 기자들은 통신영장까지 청구한 것은 저희도 의도적으로 언론자유를 침해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결론적으로 언론활동 위축된다면 유감”이라며 “더 유의해서 언론자유 위축‧침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되는 등 ‘부실수사’ ‘인권침해’ 비판이 있었던 것에 대해 김 처장은 “공수처가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으로 피의자의 인권침해한 바 있냐는 지적 뼈아프게 생각하고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보다 이런 지적이 더 저희들에게는 뼈아프다”며 “고칠 건 확실히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어느 수사기관이나 기관장이 직접 (논란과 관련해) 사과한 적 없다”며 “심사하고 사후적으로 통제받고, 자문단을 꾸리고, 인권감찰관이 감찰하는 등 이렇게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았다. 인권에 대해 앞으로 훨씬 더 강력한 높은 기준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받아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