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 회복에도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이중사 1주기를 맞아 이투데이는 유족의 동의를 얻어 이중사가 사망하기 3일 전 상담일지를 입수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었는지 재구성했습니다.
2021년 5월 18일, 재상담(6차). 저녁 6시 40분경 이예람 중사는 전투복을 입은 채로 상담소를 찾았다. 이날은 이 중사가 전입 신청한 부대로 출근한 첫날이었다. 환복한 그는 상담실에 앉아 15분 정도 성폭력 피해자 면접상담 설문지를 써내려갔다.
이후 상담사와 마주한 이중사는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선임자의 지시로 근무를 바꿔서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해 3월 2일 선임 부사관인 장 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그 날을 떠올리며 피해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의 기록을 보면, 상담사는 "내담자는 피해 상황에 대해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으며 다시 몇 분 정도 쉬었다"라고 적었다.
군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의료 안내는 작동되지 않았다. 특히 이 중사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이중사는 "밤이 되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사건 이후 주로 간부 숙소에서 지낸 그는 "무기력함과 자살 충동으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병행했지만, 현재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는 사건 후 정신적 피해를 물어보는 문항에 각각 '우울, 불안, 공포, 죄의식 등'을, 경제적 피해엔 '치료비, 수입 상실, 기타(부대비용)'에 표시했다. 이중사는 "현재 치료비와 상담료는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고 말하자 상담자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무료 상담과 의료 지원이 있다고 알려줬다.
이 중사는 "무료 지원에 대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상담자는 면담일지 의견란에 "부대 내 피해자 지원에 대한 형식적 메뉴얼은 작동했지만, 구체적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분리, 의료, 상담 지원)에 대한 부분과 고지 및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함"이라고 적었다.
또 "내담자가 피해로 인해 정신적, 심리적 불안정한 상태로 외부기관 연계 시 성폭력 피해자 상담 전문상담소로 연계하지 않았던 점이 이해가 되지 않음"이라고도 남겼다.
상담자가 '휴가'라도 쓰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이 중사는 주저했다. 이중사는 사건 발생 이후 받은 60일간 유급휴가를 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는 "정신적 힘듦은 계속되는데 유급휴가는 다 사용한 상태다. 무급휴가를 신청할 경우 피해사실이 노출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난 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보호를 위해 청원휴가 기간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정기인사 시기와 일치시킬 수 있도록 최장 180일까지 허용하라는 것이다.
또 성폭력 피해자에게 적용되는 가·피해자 분리와 청원휴가 사용 등 2차 피해 방지 규정이 성희롱 피해자에게 확대·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와 함께 '부대관리훈령',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 등에 2차 피해 정의 규정을 마련하고, 기소 전까지 가·피해자의 성명과 기타 개인 신상정보를 철저히 익명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사건 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묻는 말에 이 중사는 이같이 답변을 골랐다. 답변 중에는 '내 말을 잘 듣고 지지해주었다'도 있었다. 이 밖에도 이중사는 '어떻게 도와줄지 모르겠다며 곤란해 했다', '극도로 분노했다'도 표시했다.
무엇보다도 '2차 가해'를 두려워했다. '성폭력 피해와 관련해 발생한 2차 피해를 선택해달라'는 질문에 '가해자 가족·주변인'과 '직장'을 선택했다. 구체적 내용을 묻는 말엔 "직장상사와 가해자 부모의 합의 종용 시도"라고 서술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동료와 선임 등으로부터 회유와 압박 등 2차 피해에 시달렸다고 주장한다.
이중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2차 가해가 이뤄졌다. 3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생명권 침해 직권조사' 결정문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일 국방부가 합동조사단을 꾸려 이 중사 사망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날, 군 법무관 3명은 SNS 대화방에서 고인에 대한 2차가해성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남친은 하루 만에 돌싱됐네”, “혼인신고가 XXX이네”, “이해가 안 되네. 상속이라도 해 주려는 건가”, “남친 X 먹인 게 아닐까”라고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방에는 이 중사의 국선변호인이었던 이 모 공군 중위도 포함돼 있었다. 또 이 중사와 같은 부대였던 군 검사는 '합의 종용' 등 수사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에 인권위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추가 조사를 권고한 바가 있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안미영 특별검사는 이 중사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군 당국의 은폐·무마 의혹뿐만 아니라 2차 가해도 함께 수사할 방침이다.
군 당국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왔다. 총 25명을 형사입건해 15명을 기소했지만, 책임론이 거셌던 부실 초동수사 담당자와 지휘부는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국방부에 따르면 기소된 15명 가운데 1심 선고를 마친 사람은 현재까지 유죄 4명, 무죄 4명 등 8명이며, 6명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1명은 국방부 수감시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공소권 없음으로 재판이 종결됐다. 형사재판과 별개로 징계 및 경고 처분은 중징계 6명, 경징계 5명 등을 포함해 총 22명에 대해 이뤄졌고, 재판이 진행 중인 인원은 그 결과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서야 군 당국은 제도 정비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공군은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서 성폭력 가해자에게 '2차 피해 방지' 고지서를 발부하는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에 2차 피해 가능성을 최소화해 위반 시 강력히 징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성폭력 2차 피해를 막지 못한 간부도 처벌받는다. 병영문화 개선 대책기구인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2차 피해 방지 의무 주체와 금지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계하도록 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종류'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고 이를 어기면 강력히 처벌하도록 관련 법규를 정비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나는 필요한 경우 스스로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상담 문항에 '매우 그렇다 5'라고 표시했다. 또 '나는 언제나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에도 이같이 답했다. 앞서 그는 전화로 "5월 24일 오후 6시 면접상담" 일정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상담 이후 3일 뒤인 5월 21일, 이 중사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한 당일이자, 본인 요청으로 다른 부대로 전속한 지 사흘 만이었다. 이날 상담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라는 문항에 이 중사는 '매우 그렇다'고 표시했다.
1주기를 앞둔 이중사 부친은 이투데이에 "추모소에 꽃을 바꾸었더니 향기가 짙다"고 했다. 이어 이 중사에게 보낸 SNS 메시지도 공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딸 예람아 힘들었지? 우리 예쁜 딸 기일이 다가올수록 아빠의 마음 또한 아프구나. 가슴이 저리는구나. 아프게 한 이들은 죄를 달게 받게 할 거니 천국의 기쁨을 누리거라, 예람! 아빠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