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현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바이든 대통령이 IPEF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때가 2021년 10월 27일의 백악관 브리핑이었다고 하니 ‘급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추진된 이슈임은 틀림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가 올해 1월 발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IPEF의 구상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양한 현안을 미국을 중심으로 긴밀히 협의하고 해결하되, 중국은 여기서 열외다. IPEF에서 다룰 현안은 무역, 디지털 경제·기술, 공급망, 탈탄소·청정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노동 등 모두 여섯 분야이다. 각각의 현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동반자국가와 협력하고, 공동 발전을 모색하겠다는 의미이다.
아태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경제협의체가 이미 존재한다. 다양한 국가들이 상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연결되어 있고, 다자간 협의체도 여럿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2018년 일본, 호주, 멕시코 등 11개국이 출범시킨 초대형 FTA이다. 그런데 미국은 CPTPP의 전신이었던 TPP 시절에 트럼프의 결정으로 탈퇴하여 현재는 회원국이 아니다. 한편 중국은 2020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별개의 협의체를 발족시켰고,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작년에 CPTPP에도 가입신청을 했다. 미국은 IPEF를 통해 역내 경제 관련 논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강화할 것이고, 새로운 기구의 탄생과 함께 기존 협의체의 역할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한국의 IPEF 가입에 대해 중국은 확실한 반대 견해를 밝혔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이 컸음을 지적하고, 앞으로도 한국이 중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중국의 설명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 신냉전이 벌어지는 현 상황에서 한국은 최선의 선택지를 고를 자유가 없다. 미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에서 파레토 최적을 포기한 지 오래다. 미국이 주장하는 가치동맹에 한국이 전적으로 동참하는 문제는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에서 쉽지 않겠지만, 실용외교라는 미명하에 양쪽에서 모두 인정받겠다는 것도 이제는 현실적이 아니다.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은 연간 수출의 25%, 수입의 20%를 중국에 의존한다. 양적인 측면과 함께 핵심 산업에서의 중국 의존도는 대안을 찾기에 쉽지 않을 정도다. 가까운 예로 작년 말의 요소수 사태, 올해 봄의 자동차 부품 부족 사태 모두 중국과 관련이 있고, 결국은 중국에서 풀려야 우리 경제가 움직인다. 그동안 ‘수입선 다변화’, ‘차이나 플러스 원’ 등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지속되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우리 경제의 강점은 첨단기술 부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인데, 중국을 빼면 전 세계에서 우리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줄 나라가 그동안 별로 없었다. 아마 미국은 인도, 동남아, 남미 등에서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을 건설하려 할 것이고, 이들 나라에 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중국에 의존하던 수출 및 수입품의 대체 지역을 알아봐야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기존의 대량 판매처와 공급망을 놔두고 새로운 거래처를, 그것도 여러 군데로 뚫어야 하는 것은 분명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한국의 상황을 뻔히 들여다보는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당근을 줄 수도 있고, 골탕을 먹이려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중관계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심술을 부리면 우리만 미안하다고 해왔다. 이제부터 한국 경제는 중국과의 거리는 유지하면서, 아주 조금씩 미국과 가까워져야 한다. 한국은 중국이 모종의 빌미로 심술을 부린다면, 힘들더라도 좀 더 큰 걸음으로 미국 쪽으로 가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여줘야 한다. 다행히 중국 역시 수년 전부터 주요 부품에 대한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과 수직적 산업 계열화에 적극적이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경제 의존성을 줄여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