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우위에 있던 후보가 어느 날 상대당 후보에 덜미를 잡혔다는 지지율 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왔다. 젊은 선대위원장은 갑자기 기지회견을 자청하더니 “우리 당은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며 후보의 측근과 당내 중진들에게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비공개로 열린 당내 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참석자들이 중간에 퇴장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지층에서는 젊은 위원장을 향해 ‘내부총질’, ‘분탕질’ 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날, 후보는 홀로 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시민들에게 말없이 고개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날이 밝자 후보는 예정됐던 오전 유세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벌어졌던 국민의힘 내분 사태 이야기 일까. 아니면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일까. 주인공과 디테일은 조금씩 달라도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어제 오늘 민주당에서 목격되고 있다.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악전고투가 이어지는데다 이재명 인천 계양을 보궐 선거후보(총괄선대위원장)까지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 몰리자 민주당의 내분이 폭발했다. 박지현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전날 ‘대국민 호소’를 내놓은데 이어 25일에도 586(50대·60년대생·80년대 학번) 세대 용퇴를 공개 석상에서 제기하자 윤호중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한 86 중진들이 격분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세대교체를 주장했다. “우리 당은 팬덤 정치와 결별하고, 대중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며 강성 지지층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성희롱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최강욱 의원에 대해서는 ‘비상징계’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586은 발끈했다. 김민석 총괄선대본부장은 “민주당은 70년 역사를 갖고 있다“며 ”(각종 현안이)지도부 일방의, 개인의 독단적 지시로 처리되는 정당은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이어 “일부 팬덤의 잘못된 행태는 극복해야 하나, 권리당원의 권리 증진도 있었음을 놓쳐선 안 된다”면서 강성 지지층를 엄호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윤호중 위원장을 비롯한 선대위 지도부의 표정은 굳었다.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도 양측은 책상을 치고 회의장 바깥까지 고성이 흘러나오는 등 정면 충돌했다. 윤 위원장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고, 박지현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따라 나왔다.
지난 1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윤핵관’의 퇴진을 요구한 이준석 대표와 이에 맞선 당내 중진들, 강성 지지층간의 갈등 상황과 닮은꼴이다. 남은 관심은 같은 결말을 맞느냐다. 당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30분 연설’에 윤 후보가 ‘쌍따봉’으로 화답하면서 극적인 화해를 이뤄낸 뒤 대선서 승리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에는 시간이 없다. ‘50일이면 충분하다’던 이준석 대표와 달리 박지현 위원장에게는 ‘5일’밖에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