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보호주의가 전세계로 전염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자 식품 수출 제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기후위기와 더불어 식량 불안까지 커지면서 저소득국과 개발도상국, 빈곤층의 타격이 계속 커질 전망이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일부 식품의 수출을 금지한 국가는 19개,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한 나라는 7개로 집계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24일 이후 대부분의 수출 제한 조치가 단행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품이나 에너지, 기타 주요 원자재의 수출을 제한한 곳이 30여 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인도는 지난 13일부터 밀 수출을 금지했고 설탕 수출 제한에도 나섰다. 인도는 세계 2위 밀 생산국이자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이다.
말레이시아는 내달부터 월 360만 마리의 닭고기 수출을 금지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8일부터 한 달 가까이 팜유 수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터키는 3월 초·중순부터 쇠고기, 양고기, 식용유 등의 수출을 제한했다. 주요 곡물 생산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 옥수수, 해바라기씨 등의 수출을 금지하거나 허가제로 변경했다.
알제리와 모로코, 가나, 헝가리, 아제르바이잔 등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품 수출을 막기로 했다.
기후위기가 상존한 가운데 식량 수출 제한으로 인한 타격은 저소득국과 개발도상국, 빈곤층일수록 더 클 전망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영향으로 81개국에서 극심한 기아 인구가 추가로 4700만 명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프 후사인 WFP 수석 경제분석가는 "세계 식량 가격은 2020년 중반 이후 상승해 현재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36개국에서 식품 물가가 15%나 그 이상 올랐고 이는 수입의 절반 이상을 식품비로 쓰는 빈곤 가구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에 이어 또 다른 위기로 닥친 식량 보호주의를 막기 위해 국제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식량 위기 대응을 위한 300억 달러(38조 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수출입을 막고 식량을 바이오 연료로 전환하거나, 불필요한 비축을 부추기는 정책을 폐기하는데 각국이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굶주림 위기에 처한 취약 가구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 안전망을 빨리 개선하는데 회원국들과 협의하는 한편 수출 제한에 의존하지 않고 식량 안보를 지킬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12~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제12차 각료회의에서 식량 안보 문제가 다뤄질 전망이다.
IFPRI는 "과거 WTO 회원국들이 농산물의 인도적 수송은 수출 제한의 예외로 두는 방안조차 합의하지 못했다"며 제12차 각료회의가 이런 잘못을 해결할 기회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