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ASML 본사 등 방문…대형 M&A 행보 이어갈 듯
신경영 선언 29주년인 7일 이 전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중동 방문 이후 6개월 만에 해외 출장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1시 40분께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 로비를 통해 출국장으로 향했다. 전세기를 이용해 출국하는 이 부회장은 이날 SGBAC 게이트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은 삼성전자가 메모리에 이어 2030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1위라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각에선 이번 출장이 향후 삼성전자의 성장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중대한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18일까지 12일간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 등을 돌아보며 현지 사업을 점검할 예정이다. 반도체 장비 업체 등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대형 인수합병(M&A)을 위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 목적지는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 본사다.
반도체 초미세(나노) 공정에 필수적인 EUV 장비는 품귀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파운드리 부문에서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를 추격하며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고성능 EUV 장비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에도 EUV 장비 확보를 위해 직접 ASML 본사를 찾아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40여 대의 EUV 노광장비를 공급한 ASML은 올해 50여 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EUV 노광장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TSMC와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TSMC는 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삼성전자가 이르면 상반기 양산 계획 중인 3나노 제품을 경쟁 무기로 삼은 만큼 EUV 노광장비의 안정적인 수급은 필수적이다. 반도체 나노 기술은 웨이퍼에 새길 수 있는 전기회로와 연관이 깊다. 전기 회로가 가늘수록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반도체 성능도 좋아진다.
2016년 미국 자동차 전장 업체 하만 인수 이후 중단된 삼성전자의 M&A 여부도 관심사다.
네덜란드와 독일에는 그동안 삼성전자의 유력한 M&A 대상 업체로 거론된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와 인피니온이 있다. 영국에는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ARM이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인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등이 개발ㆍ판매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반도체의 핵심 기술들을 보유했다.
2020년 9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ARM을 최대 400억 달러(약 50조 원)에 인수하려 했지만 각국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인텔, 퀄컴, SK하이닉스 등이 ARM 지분 인수 의사를 밝혔다. 단일 기업의 ARM 인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컨소시엄이 주목받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 사건)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재판 불출석 사유를 인정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은 분명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이 부회장과 함께 전세기편으로 출국했다. 다만 최 사장은 이 부회장의 출장 일정에 모두 동행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