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언제부턴가 말하네 우릴 최고라고 / 온통 알 수 없는 네임즈(names) / 이젠 무겁기만 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옛 투 컴(Yet To Come)’의 가사다. 데뷔 이래 쉴새 없이 달려오던 이들이 그간의 부담감을 노랫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결국 14일 팀 활동 잠정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쉬지 않고 잇따른 활동에 휴식 필요했고, 멤버들의 군입대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밤 공개된 유튜브 영상 ‘찐 방탄회식’에서 저마다 그동안 쌓였던 고충과 피로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들은 “우리가 잠깐 멈추고, 해이해지고, 쉬어도 앞으로의 더 많은 시간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10일 앤솔로지 형식의 신보 ‘Proof’(프루프)를 발매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단체 활동의 1막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리더 RM은 “돌려 말하지 않고 팩트를 말하자면 원래 (BTS의) 시즌1은 ‘ON’(온)까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ON’ 활동 이후 어떻게 할지 몰랐다”며 “코로나19라는 핑계도 생겼고 그 이후 활동을 하며 확실히 팀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지민은 “지금에 와서야 우리가 각자 어떠한 가수로 팬분들에게 남고 싶은지를 이제야 알게 돼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면서 “이제서야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려는 것 같고 그래서 좀 지치는 게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RM은 “지쳤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죄짓는 것 같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슈가는 “가사가,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언제부턴가) 억지로 쥐어 짜내고 있었다.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국은 “개인적으로 좋은 시간 많이 보내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오며 한 단계 성장해 여러분한테 돌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라며 “지금보다 더 나은 7명이 분명 돼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응원을 부탁했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2015년 국내 음악방송 첫 1위를 거머쥐며 인기를 넓혀갔다. 이후 2016년 국내 시상식 대상을 차지하는 등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인 2017년부터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구가해 K팝을 대표하는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이들의 글로벌 인기가 날로 치솟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다. 당시 발표한 영어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다.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다섯 번 정상에 올렸고, 메인 싱글차트 ‘핫100’엔 협업곡 포함 6곡을 정상에 올렸다.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 미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상인 ‘그래미 어우즈’에 2년 연속 노미네이트됐고 최근엔 미국 백악관에 초청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글로벌 톱스타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이 시기가 멤버들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2020년 2월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MAP OF THE SOUL : 7) 이래 코로나19로 준비한 계획이 틀어지면서 멤버들조차도 그룹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RM은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랑 ‘퍼미션 투 댄스’부터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되게 중요하고 살아가는 의미인데, 그런 게 없어졌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13일 신보 ‘프루프(Proof)’ 발매를 기념한 유튜브 무대에서도 “2020년부터 지금까지 저희가 한 많은 것들이 계획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그때 고민하고 갑작스럽게 결정한 유동적인 것이 많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걸어가면서도 ‘이게 맞나?’ 싶어 무섭기도 했고, 정답인지 많이 고민하기도 했다”며 “많이 고생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개인 활동을 용인하지 않던 소속사의 정책도 활동 중단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개개인의 음악적 역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팀 활동을 중시하는 소속사로 인해 공식적인 개인 활동은 전무후무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지금까지 솔로 음악 활동은 정식 음반이 아닌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 형태로만 선보여왔다. 이 때문에 정작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는 멤버들의 솔로곡을 들을 수 없었다.
제이홉은 이 같은 점을 두고 “기조의 변화가 확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RM은 더 구체적으로 “믹스테이프는 원래 저작권도 없는 것들을 대충 녹음해서 기획사에 (소개용으로) 돌릴 때 쓰던 것에서 유래했다”며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믹스테이프는 노력, 시간, 자본이 웬만한 앨범 이상으로 투입됐다”고 말했다. 이어 “믹스테이프라고 했던 콘텐츠들이 앞으로 (정식) 앨범으로 본격적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 방탄소년단 개개인이 누가 있는지는 (대중이) 잘 모르니까, 우리는 가수이니 음악과 퍼포먼스로 이야기하는 게 가장 임팩트가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RM은 또 “앞으로는 믹스테이프가 아니라 앨범이 될 것 같고, 한국 음원 사이트에 이것이 나간다는 게 상징적”이라고 짚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단체 활동 잠정중단은 멤버들의 군 복무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의 맏형 진은 1992년생으로 2020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입영 연기 추천을 받아 올해 말까지 입영이 연기된 상태다. 병역 특례 제도가 특별히 개편되지 않는 한 진이 올해 안에 입대를 해야 한다.
대중문화예술인도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할 수 있게 하는 병역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통과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설사 국회 문턱을 넘는다고 해도 통상 시행까지 6개월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방탄소년단 그룹 차원의 대체복무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예정대로 군 복무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멤버들 단체 입대 예상도 나왔으나 순차적으로 입대에 무게가 실리면서 개별 활동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방탄소년단은 입대의 불확실성 때문에 올해 하반기와 내년 계획도 잡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팀 활동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면 멤버들은 솔로 활동으로 팬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앞으로의 활동 변화로 그동안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로만 진행했던 솔로 음악 활동을 정식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신호탄은 제이홉이 쏜다. 제이홉은 다음달 31일 미국 대형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LOLLAPALOOZA)’의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서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방탄소년단 멤버가 음악 축제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이홉은 방탄소년단 래퍼 라인으로서 꾸준히 작곡·작사 작업에 참여해왔다. 지난 2018년 3월에는 자신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 ‘호프 월드(Hope World)’를 발표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38위를 차지했다. 2019년 9월 발표한 솔로곡 ‘치킨 누들 수프’는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8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RM과 슈가는 프로듀서 역량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RM은 지난 2018년 믹스테이프 ‘모노’(mono.)를 발표해 ‘빌보드 200’에서 26위를 기록했다. 작년 방탄소년단 데뷔 8주년을 기념해 자작곡 ‘바이시클(Bicycle)’을 무료 공개했다.
슈가는 방탄소년단 팀 작업과 솔로 ‘어거스트 디’ 활동 외에 국내외 다양한 가수들과 협업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할시의 ‘슈가스 인터루드(SUGA’s Interlude)‘, 맥스의 ’블루베리 아이즈(Blueberry Eyes)‘, 이소라의 ’신청곡‘, 수란의 ’오늘 취하면‘, 에픽하이의 ’새벽에‘, 헤이즈의 ’위 돈 톡 투게더‘, 아이유의 ’에잇‘ 등 다양한 장르의 톱가수들과 곡을 협업했다. 최근엔 ’핫100‘ 80위에 오른 곡이자 국내 음원 차트를 휩쓴 가수 겸 프로듀서 싸이(psy)의 ’댓댓‘을 공동 프로듀싱했다.
팀의 보컬을 맡고 있는 진, 정국, 지민, 뷔는 드라마 OST 등의 작업을 해왔다.
진은 tvN 드라마 ‘지리산’의 메인 테마곡 ‘유어스(Yours)’, 뷔는 SBS TV 드라마 ‘그해 우리는’ OST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 지민은 자신과 절친한 그룹 ‘워너원’ 출신 하성운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OST ‘위드 유’를 불렀다.
정국은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가 멤버들의 지식재산권(IP)으로 만든 웹툰 ‘세븐페이츠: 착호’ OST ‘스테이 얼라이브(Stay Alive)’를 불렀다. 그는 지난해 믹스테이프를 준비하고 있다고 예고한 바 있다.
진과 뷔는 배우 활동을 할 것으로도 보인다. 진은 “나는 배우가 하고 싶었다”며 “아이돌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니 그쪽(배우)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인생은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진은 올해 안에 입대가 예상돼 연기 활동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뷔는 지난 2016년 KBS 2TV 드라마 ‘화랑’에서 막내 화랑 ‘한성’ 역을 맡아 배우로서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SNS에 한성을 연기하면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연기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 바 있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은 “방탄소년단은 팀 활동과 개별활동을 병행하는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된다. 멤버 각자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향후 방탄소년단이 롱런하는 팀이 되기 위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레이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