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코스피가 하락하며 한때 2020년 11월 수준인 2300포인트(P)선까지 밀리자 학계가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우리 증시를 떠나는 개미(개인 투자자)는 물론 외국인까지 잡기 위해서다. 학계는 인수ㆍ합병(M&A) 시 일반 주주에게도 인수인에 대한 M&A 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회사 내부자가 지분을 대량으로 매도할 때 사전 공시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제재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17일 한국금융연구원은 ‘주식시장 투자자 보호 강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정부는 투자자를 위해 큰 나무가 되고자 한다”며 “투자자가 외면하는 시장은 존립할 수 없다”고 했다.
발표를 맡은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식양수도 M&A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일반 주주는 거래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M&A 거래에 참여하지 못하고 지분 매각 기회가 없다”고 분석했다. 주식양수도 M&A란 지배 주주가 보유하는 지분을 매수인이 사적 계약을 통해 매입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활용 가능한 M&A 수단(합병, 영업양수도, 주식양수도) 중 주식양수도가 가장 많다는 점이다. 공정거래 위원회에 따르면 2017~2021년 국내기업에 의한 경영권 거래 유형별 비율을 보면 △주식양수도 82.8% △영업양수도 15.4% △합병 1.9%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대부분 회사에는 지배주주가 존재한다”며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지배주주로부터 지배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용이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합병과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M&A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고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일반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이 부여된다. M&A에 불만이 있는 일반 주주가 지분을 매각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양수도 M&A는 회사가 법적 거래 당사자가 아니라서 일반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은 부여되지 않는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활용해 모든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인수인에게 매각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 교수는 “EU식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여오면) 인수인이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의 주식을 같은 가격이 취득해 부담이 증가해 M&A 시장이 침체될 수 있다”며 “인수인에 대해 일반 주주의 M&A 매수청구권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M&A 매수청구권제도란 일반 주주에게 보유 주식을 공정가격(시가)에 처분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는 “이는 기업 가치를 증가하려는 인수인에게는 부담이 안 되나 기업 약탈자에게는 부담되는 제도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유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시장의 신뢰성 제고 방안으로 내부자가 증권거래 시 정보 투명성 강화를 제시했다. 내부자가 미공개 중요 정보를 이용해 매수ㆍ매도로 차익을 챙길 때 제재를 가하는 실효성 있는 집행이 확보됐을 경우 김 교수는 “내부자의 증권거래를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반대로 실효성이 없을 경우 “사실상 제한 없이 자기 회사가 발행한 증권을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내부자의 증권거래를 절차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즉 내부자가 증권거래를 할 경우 사전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사후 공시다. 김 교수는 “(대상자는) 수범자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 임원 및 대주주에 한정해야 한다”며 “공시 후 재산 부족 등으로 거래 계획을 변경 또는 취소할 때 허위 공시에 해당하는 경우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공시 내용은 거래 사유와 수량, 가격, 거래 기간 등 거래 조건이다. 김 교수는 “계획 수립과 실제 거래 시점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확보해야 한다”며 냉각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장내거래를 대상으로 하되 일부 장외거래를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안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가 관련 기관끼리 중복돼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갈수록 불공정거래가 대형화, 지능화, 복합화되고 있다”며 “최근 2년간 (불공정거래로 인한) 부당이득은 1조120억 원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불공정거래를 형벌 위주로 제재한다고 봤다. 안 교수는 이 탓에 입증 책임이 엄격해 기소율이 낮다고 봤다. 안 교수에 따르면 2016~2020년까지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검찰이 통보한 1244명 중 기소는 248명에 대해서만 이뤄졌다. 그는 또 “조사와 수사 절차가 중복돼 (기간이) 오래 걸린다”며 “비효율 해소를 통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제재를 해야 하고 사전 예방 효과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안 교수는 대안으로 “행정제재 수단을 다양화해 적시로 제재를 지원해야 한다”며 “동일 행위가 여러 개의 법 위반 구성요건을 구성할 때 실무과정에서 합동조사 또는 협의체 활용을 통해 절차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토론에 참석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부자 거래) 사전신고제가 면책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전 신고 후에 (내부자가) 매각을 할 때도 미공개 중요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명확한 진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임원이 매각하면 2대 주주, 일반 투자자, 일하는 직원들도 불신을 갖게 된다”며 “연쇄적 시장 불신의 데스 스파이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M&A 시 인수자가 지분을 100% 인수해 프리미엄만큼 오른다”며 “우리나라 기업 부문 대부분 문제는 부분 지분 인수에 의한 M&A에 기인한다”고 했다. 이어 “피인수 기업 주주 보호는 전무하고 부분만 인수하면 복수 상장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시가로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는 건 반드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내부자 거래는) 미공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더 문제”라며 “테마주의 경우 ‘대통령의 동창이다’라는 건 팩트”라고 했다. 이어 “미국은 회사가 상장되면 원래 주식 공모 절차로 풀린 게 아닌 창업주나 벤처캐피털이 들고 있는 주식은 별도의 상장 신고를 거쳐야 할 수 있다”며 “이런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ATS 등 거래 플랫폼이 다양화될 텐데 이럴 경우 고빈도 트레이더들이 일반 투자자들의 코를 베어 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장기적으로 여러 플랫폼이 있을 때 실효성 있는 지배구조와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날 자리에 잠석한 김광일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오늘 발표, 토론을 토대로) 해외 사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소액 주주 보호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