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숫자에서 나온다. 한 명의 지지라도 더 받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행정권력을 쥐게되며, 한 명의 의원이라도 더 확보한 다수 정당이 원내 권력자이자 국가권력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차지한다. 정당 내부 권력이라고 다를 게 없다. 당 대표는 더 많은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자연 당무에 관해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기초의회부터 대통령까지 민주주의 정치의 권력은 수(數) 의 피라미드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구조다. 수와 수가 겨루는 승부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원리는 다수결이다. 이기려면 한 명이라도 더 모아야하고, 모이려면 명분이 있어야하고, 실리가 뒤따라야한다.권력투쟁의 출발점인 정당내 계파가 형성되는 이유다. 관련기사 6면
당내 계파는 원내대표, 최고위원 등 당직을 차지하기 위한 사다리가 된다. 기업 임원 자리가 ‘직장인의 꽃’이듯 당직도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요직’이다. 당직자는 언론 노출빈도가 높아 자연스럽게 대중적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표를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계파에는 좌장, 즉 ‘보스’가 있다. 대체로 중진급인 계파 보스는 고위 당직보다 높은 자리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종착점은 대부분 대통령이다. 보스와 계보원들 사이에는 대통령 후보를 뽑는 당내경선과 국회의원 후보를 고르는 공천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가 형성된다. 당내 권력 구조, 즉 ‘족보’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권력 교체로 힘의 중심추가 이동하면서 각 정당에서도 권력 구조를 새로 짜는 작업이 한창이다. 앞으로 어떤 계파가 만들어지고 와해될지, 누가 몰락하고 누가 새로운 보스로 떠오를지는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수십년간 권력으로 가는 사다리였던 정당의 족보가 최근 전례없던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당에서는 족보는커녕 당적조차 없던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방계 취급을 받던 0선의 30대 ‘듣보’가 대표에 뽑히면서 계파의 재구성이 시작됐다. 야당은 대선에 이어 지선에서도 참패하며 권력을 잃자 오월동주했던 계파들이 사생결단을 낼 기세다 . 결과는 머지 않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승자는 족보가 되고, 진 쪽은 패거리로 몰려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정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