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한편, 같은 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의 일부 조항이 시행되었다. 국가와 지자체는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를, 지자체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탄소중립 지원센터’를 설립·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가을부터 시행될 ‘기후변화영향평가’ 외에는 탄소중립 사회 이행의 기본체계가 제도로서 모두 시행되고 있다.
자치는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고리이다. 규모화와 집중을 통한 성장주의로 사회 양극화가 깊어지고, 기후·지역·식량위기 등 복합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불균형, 불평등을 해소하고 복합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분산과 분권, 자치와 참여에 있다.
에너지 규모화, 집중화의 대표 격이 핵발전인데, 지구적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기술이기에 안전성과 경제성 모두 뒤떨어져 직접적인 탄소배출이 적음에도 유럽연합(EU)의 그린 택소노미에서도 최종적으로 배제될 전망이다. 원전에 집착하는 정부는 탄소중립에 무심하고 분산형 재생가능 에너지 전환에 소홀하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권력놀음에 빠져 있는 정권 초기, 그냥 잠시 동안 지켜보기로 한다.
오히려 이참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생활을 전환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생활정치부터 챙기자. 봄부터 나는 충남의 한 생산자조직을 조사 연구하고 있는데, 100여 명 회원들에게 기후위기와 농업 관련 의견도 물어보았다. 봄 냉해나 폭염, 긴 장마 등 이상기후가 해마다 더 자주 발생하여 모종을 기르고, 노지나 시설에 옮겨 심으며, 병충해나 수확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기후위기와 농업의 관계가 긴밀하고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해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품종이나 품목 전환, 농사 방식의 전환을 실천하겠다는 의향이 높았다. 그리고 이들은 친환경 전환을 위해, 자재 투입을 줄이고 땅을 살리는 농사로 전환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 필요한 영농기술과 자재 등을 구체적으로 지방정부와 기술센터에 요청하여 지원,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정책 지원을 기다리기보다는 구체적인 전환 실천을 조직하면 정책 지원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
엄습하는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지역에서의 일상을 통해서이며, 생활의 전환 없이 전환 사회는 구축되지 않는다. 참여를 통해 자치 역량을 높이는 것이 지방정치, 생활정치의 길이다. 한 세대의 지방자치 경험이 쌓였지만 그 요체인 주민주권은 명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법(2020년 말 전부 개정)은 주민주권을 구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주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명시하고 주민조례 발안제도 도입되었다. 자치분권 계획에 따라 사무이양과 재정분권도 강화되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는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이행 점검하는 체계, 온실가스 종합정보관리 체계를 구축하게 되며, 지자체는 기본계획 수립과 위원회 설치, 정보관리 체계 구축, 지원센터와 온실가스감축 인지예산제도, 국민참여보장과 협력기회 제공 등을 수행할 것이다.
집중과 불균형이 기후위기와 지역위기를 낳고 있어 이를 극복하는 활동에 지역, 지방정부가 나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들의 역할은 주민들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탄소중립과 지방자치의 새로운 발걸음이 함께 시작되고 있다. 위기가 기회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등을 지역위기 극복과 재생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시기이다. 주민들이 자치권을 발휘할 때이다. 각자도생의 생존법이라 할 만하다.
중앙정부는 스스로 늘 되뇌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이 지역사회 생활현장에서 탄소중립에 관심 갖고 전환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법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