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표 올리고 과세 하한선 유지하거나 내릴 듯
정부가 직장인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소득세제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도 실질 소득은 제자리 걸음인 상황에서 급여근로자들의 소득세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10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소득세제 개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구체적인 개편 방향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의 세부담을 줄여 주는 방향으로 현행 소득세 과표와 세율을 전반적으로 손 볼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과표 구간 조정에 나서는 것은 2007년(2008년 시행) 이후 15년 만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8단계 과세표준 구간을 두고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한다. 구체적으로 △1200만 원 이하 6% △4600만 원 이하 15% △8800만 원 이하 24% △1억5000만 원 이하 35% △3억 원 이하 38% △5억 원 이하 40% △10억 원 이하 42% △10억 원 초과 45%가 적용된다.
이는 2008년부터 적용한 4단계 세율 체계(1200만 원 이하 8%·4600만 원 이하 17%·8800만 원 이하 26%·8800만 원 초과 35%)의 기본 틀을 사실상 15년째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서민·중산층이 몰려있는 1200만 원 이하(세율 6%)와 4600만 원 이하 구간(세율 15%), 8800만 원 이하 구간(세율 24%)은 2010년 이후 과표구간 세율은 그대로다.
해당 기간 연평균 1.3%씩 물가가 올랐음에도 과표·세율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사실상 세금이 늘어난 셈이다. 가령 한 근로자의 소득세 과표(근로소득금액에서 각종 공제금액을 제외한 금액)가 4500만 원에서 임금 상승 등으로 3%(135만 원) 늘어나 4635만 원이 됐고 그해 물가 상승률이 3.0%였다고 가정하면 이 근로자의 실질 과표는 사실상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명목 과표는 증가했기 때문에 46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종전보다 오른 24%의 세율이 적용된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변함이 없지만, 훨씬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돼 결과적으로 증세가 되는 셈이다.
경제 규모 증가에 비해 소득세를 과도하게 징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로 급여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소득세 규모는 2008년 36조4000억 원에서 지난해 114조1000억 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 개선 건의서’에서 현행 근로소득세 시스템이 물가·임금 상승에도 저세율 과표구간(1200만∼8800만 원)에 대한 조정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소득세 과표구간 상향 조정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비춰볼 때 정부는 중·저소득층의 과표 구간을 상향 조정해 세 부담을 덜어 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과표 하위 구간을 세부 조정하는 방안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현 상태에서 과표를 일괄적으로 올리기만 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 있어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는 2013년 531만 명에서 2014년 802만 명, 2015년 810만 명으로 증가했다. 2019년(705만 명)으로 700만 명을 넘겼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19년 기준으로 36.8%에 달했다.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약 4명 가까이는 근로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부는 면세자 확대를 막기 위해 하위 과표구간을 현행(1200만 원)대로 유지하되 구간을 세분화하는 방안과 현행보다 낮은 하위 과표구간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하위 과표 구간을 신설하면 종전까지 세금을 내지 않던 근로자들이 소액이라도 세금을 내게 돼 조세저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