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부 교수
며칠 전 특별한 경험을 하였는데, 서울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에서 행사 참석 도중 잠시 지하철역과 연결된 광장에 내려왔는데, 갑작스러운 폭우로 알루미늄패널과 바닥을 때리는 엄청난 빗소리, 시원해진 기온과 더불어 거대한 노출콘크리트 트러스트 구조물로 만들어진 미래로의 하부 광장 아래에서 비를 맞지 않으면서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날 나의 온전한 다섯 기관을 통해 평소 세밀하게 느끼지 못했던 오감들이 살아나면서 한꺼번에 즐길 수 있었고 이런 도시공간이 많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청각으로 빗소리를, 시각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촉각으로 미세하게 낮아진 시원한 온도를, 혀와 코를 통해 커피 맛과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그곳을 몇 번 방문하곤 했지만, 온몸의 감각이 살아 있으면서 오감을 즐겼던 그날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그들이 가진 신체기관으로부터 전달받는 오감을 통해 매일매일 살아간다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및 미각이 주는 영향과 관련하여 역사적 또는 실증적으로 살펴본 자료들이 존재할 텐데, 마크 스미스의 ‘감각의 역사(Sensory History, 2007)’는 인간이 감각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역사 속에 들어가 있는지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최민아의 ‘눈 감고, 도시’(2019)에 감각은 우리를 둘러싼 도시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도록 안내할 수 있는 도구이며 감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도시가 진짜 살아 있는 도시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사실 인간이 가진 오감을 일깨우는 도시를 만들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었고, 감각은 사람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일 수도 있어서 가능하면 부정적이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오감 중 인간이 받아들이는 자극의 80% 이상은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를 가진 도시 만들기 및 낡고 오래된 도시를 아름다운 도시(Beautiful City)로 만들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끔 영화에서 시카고를 떠올리면 지상 전철로 인한 소음이 가득한 혐오스런 도시로 각인되곤 하는데, 도시 내부는 다양한 소리들이 집합되어 특징에 따라 소음 또는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전철 및 차량 등으로 유발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방음터널, 방음벽 및 방음수림대를 설치하지만, 버스커들의 음악공연과 함께 일산 호수공원의 노래하는 분수는 도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특징을 가장 구분되게 하는 것은 후각을 통한 냄새로, 맛있는 고기를 즐기기 위해 마장동 또는 독산동 축산시장을 가면 독특한 악취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현재의 기술로는 도시 내 악취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반면 한강을 따라 핀 야생화에서 내뿜는 꽃향기는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만든 어떤 향수보다도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건조 환경에 자연의 향기를 끊임없이 입히려고 노력하는가 봅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건강한 식재료 및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미각을 통해 건강한 삶을 즐기려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미식문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옥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도 디저트 거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영향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여름에 피부를 통한 촉각이 매우 중요해 스마트 그늘막이나 쿨링포그와 같은 미세기후 조절장치를 설치하고, 도시를 채우고 있는 건물의 외피와 관련하여 콘크리트나 유리보다는 적갈색 벽돌 및 나무로 된 건물이 좀 더 따스한 촉감을 주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밀집된 성수동이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촉각을 느끼게 하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습니다.
도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사람이 가진 오감을 잘 활용해서 눈으로 읽는 도시, 귀로 듣는 도시, 코로 맡는 도시, 입으로 맛보는 도시 및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오감이 균형되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도시민들이 도시에서 오감을 일깨우고 즐긴다면 우리의 도시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