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업·기관 디폴트 가능성도 커져
ICE·무디스·모닝스타, 기후 예측 관련 기업 인수 또는 제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이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는 사례가 늘어가는 가운데 이에 대한 월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후변화가 채권 투자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채권 투자의 핵심은 금리 방향성과 채무자의 장래 상환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인데, 기후변화 리스크가 채무자의 상환 가능성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산불, 홍수 폭풍우, 가뭄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며 해당 지역의 지방채, 사채, 모기지담보부증권(MBS)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에 최근 월가에서 채권 투자의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기후변화 위험 예측이 주목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개했다.
대표적인 업체가 2016년 보스턴에 설립된 리스큐(risQ)다. 이 업체는 미국을 100㎡의 구획으로 나눠 각 구획에서 기후변화 현상이 일어날 확률을 예측하고, 이로 인한 채권 관련 리스크를 평가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유명 금융서비스업체 인터콘티넨탈익스체인치(ICE)에 인수됐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최근 리스큐와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포투엔티세븐이라는 기업의 과반 지분을 확보했다. 투자정보제공업체 모닝스타도 XDI와 업무 제휴를 맺고 채권시장의 기후변화 위험 평가 사업을 시작했다.
월가가 이러한 지리 공간분석과 기후변화 위험 평가에 주목하는 것은 투자상품에 대한 자산운용사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를 돕기 때문이다. 최근 운용사들에 의한 그린워싱(친환경 위장) 논란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도 월가가 데이터 측면의 기후변화 예측법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디스의 ESG 솔루션 부문 대표인 안드레아 블랙맨은 "위성 데이터는 (투자) 자산과 위치에 대한 정보를 식별하고, (환경) 영향을 측정하는 데 있어 추가적인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이러한 기후변화가 채권의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대부분의 채권 발행 기업이나 기관들이 민간 보험에 가입하거나 재해 발생 후 연방 차원이나 주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간 월가에서 기후변화 예측의 중요성이나 수요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최대 전력설비 회사인 PG&E가 2019년 캘리포니아주의 대형 산불의 발화 책임에 대한 배상금 여파에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하고, 산불 피해를 본 지역 기관들의 디폴트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기온이 섭씨 3도가 상승하면서 차입비용을 나타내는 리스크 지표인 일드 프리미엄(yield premium)이 두 배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그만큼 채권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의 채권 발행 기업의 27~38%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피해 또는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새로운 규제로 인해 시가총액의 25%를 피해 볼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WSJ는 이러한 기후변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지출에 여전히 회의적인 펀드매니저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채권투자에 앞서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기업 신용등급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리스큐는 기후변화 예측은 채권은 물론 MBS와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의 리스크를 판단하는데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산불이나 홍수로 주택소유자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수 있고, 또 기후변화로 인해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