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헌트'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이정재 감독의 말이다. 그는 극 중 핵심 반전을 쥐고 있는 안기부 해외팀 차장이자 자신이 직접 연기한 박평호 역의 중요한 심경 변화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5월 열린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헌트’를 국내에 최초 선보인 이날 자리에는 주연 배우로 함께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조연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이 참석해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헌트’는 독재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정보조직 안기부 소속으로 상호 경쟁, 감시 관계에 놓여 있는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액션 첩보물이다.
대통령 암살 작전을 전해 듣게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의심하게 되면서 영화는 심리적 긴장감을 확보하고, 규모 있는 총격 액션 시퀀스를 전개하는 등 장르적 색채를 확실히 한다.
이후 무언가 비밀을 감춘 듯한 이정재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정우성 사이 예상치 못한 오월동주가 시작되고, 반전의 결말을 맞는다.
‘헌트’로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정재는 "주제를 잡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과연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인가 고민하면서 80년대 배경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이야기의 시작점을 전했다.
그는 “영화상에서 주제가 너무 도드라지고 무게감을 주는 건 부담스러웠다. (다만) 우리가 믿는 신념에 대해서는 한 번 정도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캐릭터의 딜레마를 살짝 보여주는 정도로만 연출했다”고 사건과 인물에 접근한 방식을 설명했다.
국내팀 김정도 차장 역을 맡은 정우성은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본인의 죄책감일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책임감일 수도 있다. 그 신념이 드러나지 않게끔 옷매무새와 외형을 깔끔하게 하려 신경 썼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는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고도 전했다.
"첫 촬영 때 의상과 마지막 촬영 때 의상 사이즈가 달랐다. 나 자신이 체력이 떨어지는 게 너무 느껴지더라. 그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곁에서 이정재 감독을 지켜본 정우성은 “지쳐 숙소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는 동료로서 측은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선택한 책임의 무게를 꿋꿋하게 다 짊어지고 가는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날 공개된 ‘헌트’의 강점은 잘 설계된 액션 시퀀스다. 총격 대결과 무력 진압, 심지어는 고문 장면까지 시대를 반영한 첩보물이 갖춰야 할 볼거리에 품을 들였다.
박평호 차장의 부하 방주경 역을 맡은 전혜진은 "액션이 힘들긴 하더라. 화약 소리가 이렇게 동선을 꼬이게 할 줄은 몰랐다. 총기 액션, 카체이싱 장면 등이 험하기도 하고 (작업 과정과 동선이) 복잡했다"고 회상했다.
극 중 이정재와 대립하는 역을 맡은 정우성은 "복도에서 부딪히는 장면이 있는데,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우리 둘 다 테이크를 몇 번 안 가도 치열함이 온 얼굴과 몸으로 뿜어져 나오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정재 씨와 내가 굉장히 오랜만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됐는데, 나쁜 도전이 아닌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하면 멋진 대립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을 확인했던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헌트'에서는 이성민, 주지훈 등이 카메오 출연한다. '헌트'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의 전작 '공작'의 주연 배우들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영화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분들이 많았지만, 중간중간 계속 나오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방법을) 짜내고 짜내다가 한 번에 나왔다가 한 번에 퇴장하는 걸로 정했다"며 웃었다.
'헌트'는 다음 달 10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