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처리 기술은 과기정통부에서 담당
정부, 로드맵대로 준비…"탈원전 기조 아니다"
국회 과기정통위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 나와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연구·개발(R&D) 로드맵에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을 넣지 않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행법에 따라 상황에 맞는 절차부터 진행하는 것이라며 처리 기술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반박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31일 "고준위 방폐물 R&D 로드맵에 처분 기술만 담겼다. 이는 기존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이어간다는 취지"라며 "처리 기술이 빠진 것은 원전을 재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산업부가 에너지기술평가원 및 원자력환경공단과 토론회를 통해 공개한 고준위 방폐물 R&D 로드맵에는 △운반 △저장 △부지 △처분 등 4개 분야만 내용이 담겼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관련한 기술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은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만 하지 않고, 재사용할 수 있게 처리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 후 재활용하는 방식을 도입 중이다. 한국은 전기를 이용해 핵연료를 처리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실증 단계에 돌입하지 못했다.
이에 산업부도 처리 기술을 섣불리 로드맵에 담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현행법상 산업부는 처분 기술까지만 담당하고 처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해야 한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에 따르면 '처리'에서 사용후핵연료는 제외된다. 원자력안전법에도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과기정통부와 산업부가 협의해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206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처리에만 신경을 쓰면 시간적 제약과 비용이 있고 촉박하다"며 "일단 법을 제정해서 부지 선정 절차를 밟는 게 첫 단추"라고 반박했다. 이어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핵확산 문제나 주민 수용성 문제, 경제성 문제가 있고 파이로프로세싱의 실용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좋은 (처리) 기술이 개발되면 처분을 안 해도 된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산업부의 주장대로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을 현재 미국으로부터 검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약이 많은 상태다. 파이로프로세싱 방법을 적용하면 독이 많은 핵물질이 나오는데 이를 소각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해야 하고, 실증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미국이 원자력 재사용을 반박할 수도 있다.
산업부는 로드맵대로 일정을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국회 내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과기정통위 소속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처리 관련) 기술을 개발했으면 그걸 사용하는 게 맞다"며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수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은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원자력 계 내부에서 의견을 어느 정도 모았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기술 성숙도가 낮으니깐 개발을 좀 더 하고 고준위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과 로드맵에 따라 늦지 않게 빨리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합의된 법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을 시작할 수 있는데 그게 늦어지면 원자력 수출 경쟁력도 떨어진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산업부에선 법에 따라 할 수 있는 걸 순서대로 빨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