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설(說)이었던 삼성전자 물적분할 가능성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뒤 재상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거부감과 경영 기조를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외국계 헤지펀드 사이에선 삼성전자가 물적분할을 ‘진지하게(Seriously)’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금융당국이 물적분할 뒤 자회사를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에 대해 칼을 빼든 것을 두고도 삼성전자의 물적분할과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전언이다.
삼성전자 물적분할 가능성은 이전부터 꾸준히 나온 이슈지만, 지난달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증권이 발간한 ‘지정학 패러다임 변화와 산업: 지경학(Geo-economics) 시대와 반도체’ 보고서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사설이 재등장하면서다.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떠돌던 설이 증권사 보고서에 등장하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보고서는 “반도체 인력에는 보상과 자극이 필요하다”면서 인텔의 낸드 부문을 인수하고 솔루션 부문의 미국 상장을 시도 중인 SK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회사가 잘되고 주가가 상승하면 나(인력)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도 파운드리를 분사하고 이를 미국에 상장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반문했다.
만약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물적분할하면 분할한 자회사를 나스닥에 상장하는 방법과 국내에 상장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논의된다.
나스닥에 상장하는 건 그나마 괜찮은 시나리오다. 현재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데, 나스닥에 상장하면 반도체 부문의 리레이팅(재조정)이 나타나면서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자회사가 한국에 상장할 때다. 모회사에서 ‘알짜’ 사업부가 떨어져 나가며 생기는 디스카운트(할인)를 피하기 어렵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만약 분사한다면 인적분할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물적분할을 해야 한다면 자회사 주식의 50% 이상을 삼성전자 주주들에게 현물로 배분하고, 신주 발행과 구주 매출 비중을 맞춰 주주 환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물적분할이 “전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물적분할에 대한 투자자의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국민주’인 삼성전자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DB하이텍도 파운드리 분사설이 나온 하루(7월 12일) 동안에만 주가가 15.70% 폭락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 이슈를 겪었던 데다가, ESG 경영을 강화하는 삼성전자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물적분할과 같이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물적분할에 대한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 물적분할은 핵심적인 사업부문을 떼서 자회사로 만드는 게 문제가 됐는데, 주주들의 반발을 고려하면 핵심적인 반도체 부문을 떼어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물적분할과 관련해) 아무것도 진행되는 게 없고,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