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인재 확보 '총성없는 전쟁'
영주권 내세워 아시아 인재 영입
LG엔솔·SK온 대학과 계약학과
"인재양성 동시에 이탈방지 필요"
국내 배터리업계는 최근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직원에 대한 국내 기업의 처우 불만, 중국·미국 등 경쟁 업체들의 공격적 인재 영입이 우수 인재 유출의 원인으로 꼽힌다.
17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해 보면 해외 경쟁기업들은 파격적인 대우로 국내 배터리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 배터리 관련 핵심 인력들은 석·박사급임에도 연봉 수준이 글로벌 업체보다 뒤떨어지는 상황이다.
전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CATL은 2019년 한국 인재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며 기존 연봉 3~4배의 조건을 제시했다. 최근 이직이 증가하는 유럽 배터리 업체의 경우 국내 기업과 처우를 비교했을 때 1.5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Ford)는 한·중·일 인재를 중심으로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고 영입된 인재에게 ‘H-1B’ 비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학사 이상의 전문직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발급되는 것으로, 총 6년 동안 미국에서 체류·근무할 수 있는 비자다.
미국은 필수인력 모집에 한계가 있을 때 기업이 대상자가 왜 필수인력인지 소명하고, 인력 보강을 위한 노력을 입증할 경우 영주권 발급을 요청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사실상 영주권 보장을 특전으로 아시아 인재 채용에 나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재난 극복을 위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대학교와 손잡고 계약학과를 설립하며 직접 인력 양성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한양대와 배터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맞춤형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학원 배터리공학과 내 우수 인재를 LG에너지솔루션 산학장학생으로 선발해 배터리 전문가로 양성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외에도 연세대·고려대에 계약학과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SK온도 자체 인재 육성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성균관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국내 대학과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다. 올해 3월에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배터리 계약학과 신입생을 모집했다. 매년 10명 안팎으로 선발해 졸업 후 채용까지 이뤄진다.
삼성SDI는 주요 임원들이 나서 직접 ‘인재 모시기’를 시작했다. 삼성SDI는 최근 국내 박사급 인력으로 ‘테크 앤드 커리어 포럼(Tech & Career Forum)’을 개최하고 우수 인력 발굴에 나섰다. 이 외에도 포스텍, 서울대, KAIST, 한양대 등과도 배터리 인재양성 협약을 맺었다.
내수 인원으로 충족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하자 해외 인재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12일 LG에너지솔루션은 인재 영입 관련 경력직 채용 공고를 게재했다. 모집 분야는 인재소싱·해외인력확보·채용 브랜딩이다. 특히 해외 인력 확보는 해외 법인 중량급 인재 및 생산 인력 채용을 지원하는 업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수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SK온 경영진은 지난해 미국 현지에서 해외 인재 영입을 위한 글로벌 포럼을 개최했다. 토론회 형식이었지만 미국 중ㆍ남부 지역 7개 대학에 재학 중인 이공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실상의 캠퍼스 취업설명회였다.
전문가들은 인재 양성·영입에 힘쓰는 것과 함께 해외 업체로의 인재 유출 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기업의 자체적 대책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핵심 인력들이 나가는 것은 국부가 유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국내에서 양성한 인력이 결국 해외로 인재가 떠나면 양성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정부가 산업계와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해 미래전략산업 인력 확충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국내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