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衣食住). 학생 때 사회 과목에서 배운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다. 그 중 식(食)은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이다. 먹지 않으면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할 수 없고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아울러 먹고 나서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있다. 우리 몸에서 영양분을 제공한 뒤 찌꺼기가 된 것을 배출하는 일 말이다. 흔히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 ‘잘 먹고 잘 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먹고 난 뒤 배출하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방사성 폐기물 업계에선 방사성 방폐물 처리시설을 ‘화장실’에 비유하곤 한다. 가정마다 화장실이 있듯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걸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화장실’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방호복, 장갑 등 중·저준위와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폐기물이 있다. 현재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고준위 처리장은 만들지 못했다.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휴지통은 있지만 정작 변기는 없는 꼴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용하고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은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 핵연료 임시 보관소다.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임시 보관소의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각 원전 본부의 포화율과 포화 시점은 △고리 85.9%, 2031년 △한빛본부 74.9% 2031년 △한울본부 82.5% 2032년 △월성본부 62.9% 2044년 △새울본부 25.4% 2066년 이다. 고리, 한빛, 월성 등은 포화시점이 턱밑까지 차 올라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 야 한다.
올해 7월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R&D 로드맵’ 1조 4000억 원을 투입해 2060년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 방폐물의 처리 시설을 완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포화시점이 다가온 원전을 위해선 임시저장시설을 마련해 저장한 뒤 2036~2043년 준공하는 중간저장시설로 고준위 폐기물을 옮겨야 한다.
국내·외 지구물리탐사 조사·분석 결과 등을 학습시킨 머신러닝 기반 부지조사 결과 해석모형 등을 2027년까지 개발하고, 부지모델링 기법도 현재 2D 기반 모델에서 3D 모델 기술로 고도화 해 지질구조, 수문 등 부지특성 통합 모델링 기술을 2029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10만 년 이상 천연방벽 성능 입증을 위해 지각변동과 함께 기후와 해수면 변동에 따른 생태계의 영향 등 지질환경 장기변화 예측기술도 2029년까지 마련한다. 부지선정 방법론 및 부지조사·적합성 평가 절차 등을 2023년까지 만들고 장기 지각거동 안정성 평가, 부지특성 예비모델 구축 및 지질환경변화 모델링 기술 등을 2029년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는 원전 화장실 건설을 위한 계획을 세밀하게 짜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계획을 철저하게 마련해도 국민의 이해와 협조 없이 우리의 원전 화장실 성공적인 건설은 어렵다. 고준위 방폐장 유치 지역 국민의 동의 또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 등도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한 적절한 믹스는 필수다. 원전은 에너지 믹스의 주요한 에너지원 중 하나며 원전을 사용하기 위해선 원전 화장실은 꼭 필요하다. ‘잘 먹고 잘 싸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 에너지 정책도 건강하려면 에너지를 잘 쓰고 그 뒤처리도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의 에너지 백년대계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