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용은 폐배터리의 모듈 또는 팩 단위에서 단순 수리 후 재조립을 통해 에너지저장장치(ESS), 무정전전원장치(UPS), e-바이크 배터리 등으로 사용한다. 배터리 셀을 해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정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추가 비용이 적다는 장점을 가진다.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재활용은 폐배터리의 셀 단위에서 파쇄, 분쇄 및 추출 공정을 통해 코발트, 니켈, 리튬 등 유가금속을 회수한다. 원재료 수입 대체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재활용 기술을 갖춘 전문 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폐배터리 순환 산업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비례해 폐배터리 규모가 급속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둘째, 소각 또는 폐기 시 환경 문제와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고, 셋째, 희유금속의 확보와 원가 절감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배터리 핵심 소재의 잠재 채굴량이 한정돼 있는 데 반해, 자원 민족주의, 지정학적 리스크, 무역 분쟁 등으로 인해 조달 차질이 발생할 위험이 커졌다.
전기차 배터리 수명이 8~10년이라고 가정하면, 전기차 시장에 8~10년 시차를 두고 고스란히 폐배터리 시장이 형성된다. 테슬라의 ‘모델 S’를 필두로 전기차가 의미 있게 팔리기 시작한 게 2013년부터인 만큼, 9년이 지난 올해부터 폐배터리 시장이 태동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폐배터리 시장은 2025년 42기가와트시(GWh)에서 2040년 3455GWh 규모로 성장해 연평균 성장률이 34%에 달할 전망이다.
주요국의 폐배터리 순환 정책을 비교해 보면, 중국이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국가로서 폐배터리 분야에서도 가장 적극적이고, 유럽은 환경적 측면을 강조하며 선제적인 배터리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 관리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폐배터리 순환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데, 최근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촉매가 될 것이다.
한국은 배터리 제조 강국이지만, 중국, 유럽 등과 비교하면, 배터리 이력 관리, 재활용 단계별 국가 표준, 회수 인프라 등 폐배터리 순환 관련한 제도적, 법적 기반이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전기자동차 폐배터리의 분리·보관 방법에 관한 세부규정’과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면서 전국 4곳(시흥, 대구, 정읍, 홍성)에 전기차 배터리 수거센터가 마련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폐배터리 순환 시장이 활성화될 개연성이 높고, 마땅히 활성화돼야 한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3사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 3사는 CATL, BYD, 파나소닉과 함께 6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 3사의 점유율은 현재 26%이지만, 궁극적으로 50%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 한국 3사가 미국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기반을 확보한 반면, 중국 2사의 텃밭은 보조금 소멸과 함께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다. 생산량이 많아지는 만큼, 순환 시장에서도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한국 배터리 점유율에 비해 4대 소재의 국산화율이 낮고, 주요 원소재는 중국 등에서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리튬과 니켈은 2025년 이후에 공급 부족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소재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재활용을 확대해야 한다.
폐배터리 순환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2025년경까지 업체별 주도권 싸움이 치열할 것이다. 자동차, 배터리, 에너지, 재활용 전문 업체 등 사이에 다양한 협력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교환 사업, 배터리 구독 서비스(BaaS)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시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