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위크를 통해 생각하는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전반적 소비자 상품 디자인을 업으로 한다 해도 패션 트렌드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이 중요하기에 패션위크는 모든 산업에서 관심을 가지는 행사이다. 특히 핸드폰, 자동차, 인테리어, 레스토랑 등 라이프스타일에 연관된 상품과 서비스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면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다음 시즌 소비자가 원하고 관심을 보일 새로운 디자인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도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패션은 몸에 걸치는 비주얼을 넘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는지, 또는 사람들이 사회에 동조나 반항을 하기 위해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하는지를 알려주고, 산업이 이를 통해 소통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뉴욕패션위크는 1943년 미국 패션산업 조직의 언론 디렉터였던 엘리너 램버트(Eleanor Lambert)가 ‘프레스위크(Press Week)’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가장 중요한 의도는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전화에 휩싸인 기회를 이용해 세계 패션의 중심을 뉴욕으로 이동시키려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The 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는 1993년 이름을 패션위크로 바꾸고 뉴욕 디자인을 전 세계에 알리고 전파하고 있다. 전 세계의 패션 바이어, 디자이너, 사업가, 예술가, 연예인, 재력가 등이 참여하여 일 년에 2월과 9월에 두 차례 열리는데, 이를 통해 매년 약 1조4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매년 봄가을의 행사는 창의력과 독창성, 대중성은 물론 기이함,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는 각양각색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이를 들여다보면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시도가 어느 정도 큰 틀에서 묶이는 것도 알 수 있다. 사회의 관심도 문화도 패션도 어느 정도는 돌고 돈다는 표현이 있는데, 지난 트렌드가 같은 모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를 새로운 해석으로 다시 끌고 나오는 것이다.
이번 패션위크의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는 1990년대 패션의 재해석인 듯하다. 1990년대는 필자가 한국과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로, 그 어느 때보다 물질의 소비가 풍부해지고, 특히 여성의 교육과 사회생활 기회가 커지면서 여성성을 드러내는 표현들이 과감해지며 점점 사회가 세련되어가는 시절이었다. 1980년대 화려했던 색감을 줄이고 미니멀리즘이나 톤다운된 색으로 깊은 컷이나 작은 부분을 화려한 포인트컬러로 표현하는 디자인이 대세가 되어가던 시기였다. 이번 패션위크에서는 이런 1990년대 감성을 다시 들고나오면서 이 세대의 관심이 많이 강조되었는데 특히 환경, 사회정의, 포용성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모델들의 모습도 다양했으며, 자연섬유보다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섬유의 혁신이 눈에 띄었다.
패션계는 오랫동안 백인 남자 디자이너가 주류를 이룬 산업이었으나, 올해는 모델로만 등장하던 흑인들이 디자이너로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동양인 디자이너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왜 아직 동양에는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이 큰 패션(산업)쇼가 없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세계 4대 패션 중심지는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이고 4대 패션위크도 이 도시들이 주도한다. 서울, 상하이, 홍콩, 도쿄의 패션위크가 그저 그런 지역 이벤트에 머무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답은 결국 교육에 있는 듯하다.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세계적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혁신적 교육 커리큘럼이란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왜냐하면, 이제 패션도 디자인도 그 정의와 방향과 공간을 아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이 커지면서 기존과 다른 형태의 패션과 디자인 교육이 가능해지고, 우리 교육기관들이 오랜 명성의 세계적 디자인 교육기관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패션위크 등 대형 이벤트를 통하여 세계 패션의 중심이 유럽에서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넘어온 것처럼, 서구 중심의 디자인 주도권이 동양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정부가 산업 차원의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