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물의를 사과한 하정우에게 사실상 공백기는 없었다. 벌금형 선고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1월부터 약 두 달 간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수리남’ 촬영으로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촬영했고, 올해까지 김성훈 감독의 영화 ‘피랍’(미개봉) 촬영으로 약 네 달 간 모나코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에 머문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촬영했다고 한다. 물론 이미 약속된 촬영 계약이 지연된 것인 만큼 ‘영화 스태프에게 피해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을 다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영화계의 대응이다. 큰 물의를 일으킨 배우를 손쉽게 기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서다. ‘수리남’으로 복귀를 알리기 전인 올해 8월, 이미 신작 ‘하이재킹’ 캐스팅이 확정됐다고 한다. 제작비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상업 영화다. 오늘 10월 문을 여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를 ‘액터스 하우스’ 프로그램 게스트로 섭외했다. 관객 앞에 배우가 직접 나서서 “연기 인생과 철학을 나누는“ 시간이라는 설명이다.
하정우 사례만의 문제는 아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2019년 구속기소돼 그해 7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박유천은 영화 ‘악에 바쳐’로 다음 달 복귀한다. 형을 선고받은 지 약 1년 반 만에 영화에 캐스팅된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향정신성의약품을 불법 투약하고 벌금형이나 집행유예형을 받은 뒤에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상품성 있는 배우를 데려다가 일단 팔릴 것 같은 콘텐츠를 내놓고 보겠다는 업계의 둔감한 사회적 감수성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