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견생(犬生) 찾는 14마리 안내견 “응원하고 기다릴게”

입력 2022-09-20 19:38수정 2022-09-2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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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미소 오간 ‘2022년 안내견 분양식’
“안내견에게 산책은 일이 아닌 즐거움”

▲훈련을 받는 안내견들이 잔디로 뛰어나와 놀고 있다. (강태우 기자 burning@)

진정한 복지 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초일류 삼성’을 향한 변화의 첫걸음으로 사회 공헌을 강조하며 이 같은 생각을 내비쳐왔다. 20일 오전,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나 이 회장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곳에 다다랐다.

서울에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이 회장이 지난 1993년 신경영 선언 직후 설립한 시각장애인 안내견 양성기관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안내견 학교는 양돈장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이날 이곳에서 ‘제2의 견생(犬生)’을 찾는 14마리의 안내견을 만났다. 안내견 학교는 ‘만감이 교차하는 장소’이었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새 출발을 위한 기대감, 안내견들에 대한 대견함, 헤어짐과 만남으로 인한 그리움ㆍ기쁨 등 많은 감정이 오갔다.

안내견부터 예비 안내견까지 만나 ‘웃음꽃’

▲훈련사 주변으로 예비 안내견들이 모여 있다. (강태우 기자 burning@)

안내견 분양식 행사 전 안내견 학교 내 시설을 둘러본 뒤 보행 체험을 했다. 훈련 견사에서는 약 30마리 정도의 후보 안내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내견들은 조용히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박태진 삼성화재안내견학교장은 “이곳 훈련 견사에 있는 강아지들 가운데 30%만 안내견이 된다”며 “훈련사의 중요한 역할은 훈련받는 강아지들이 안내견에 적합한 성격인지 아닌지 등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내견 양성은 △탄생 후 안내견 학교에서 돌봄(0~2개월) △자원봉사 가정에서 양육 및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퍼피워킹(3~14개월) △안내견 학교 훈련 입문(14개월) △훈련(15~22개월)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매칭(23개월) △파트너 동반교육(23~24개월) △분양식 안내견 활동 및 사후관리(만2~8세) △은퇴식, 은퇴 및 사후관리 (만8세~) 등의 과정을 거친다.

안내견 학교에서 이뤄지는 훈련은 세계안내견협회에서 지정한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주로 바깥에서 인도, 지하철 등을 거치고 용인, 분당, 강남 등에서 훈련을 한다.

▲안내견 지니가 보행 체험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 (강태우 기자 burning@)

견사를 둘러본 뒤에는 안내견 ‘지니’(암컷, 리트리버)와 함께 보행 체험을 했다. 한 체험자는 안대를 쓴 채 지니의 오른쪽 다리 옆에 주먹 하나의 공간을 두고 섰다. 지니를 믿고 몸을 맡긴 체험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지니와 함께 평지부터 계단, 장애물까지 거뜬히 보행한 뒤 제자리로 왔다.

박 교장은 “실제 시각장애인분들도 자세 잡는 데만 반나절이 걸리는 데 2주간 학교 내 숙소에서 먹고 자며 안내견과 함께 보행 연습을 한다”며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개를 믿고 편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보행 체험이 끝난 뒤에는 8주가 된 안내견 후보생들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깨방정을 떨며 방문객들을 향해 돌진하는 인절미들의 모습에 현장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강아지들이 있는 공간에는 장난감, 터널, 특수한 소재의 바닥 등이 있었는 데 이는 다양한 소리와 촉감, 환경을 경험시키기 위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생후 8주의 예비 안내견들이 놀고 있는 모습. (강태우 기자 burning@)

안내견의 새 출발…그리고, 은퇴 안내견의 새 가족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이 6년에서 8년간의 안내견 활동을 마친 은퇴견들을 축하하며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분양식 행사에서는 눈물과 미소, 이별과 만남이 오갔다. 이날 분양식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8마리와 은퇴 안내견 6마리가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보통 안내견들은 약 1년을 함께 자원봉사자(퍼피워커)와 살고 학교로 돌아와 훈련을 거친 뒤 대략 2살쯤 파트너를 만난다. 이후 약 7년가량 안내견 활동을 하고 8~9살쯤 은퇴한다. 퍼피워커 중 처음 돌봤던 강아지의 은퇴를 기다리는 경우도 꽤 있다.

이날 8마리의 퍼피워커들은 파트너와 안내견들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함과 동시에 추억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는 헤어짐을 준비하는 자리였지만 기다림을 약속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안내견 ‘그루’의 퍼피워커인 장혜림 씨는 “파트너와 그루의 앞날을 응원한다”며 “활동을 마칠 때까지 그루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겠다”고 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 이동하는 은퇴 안내견의 모습. (강태우 기자 burning@)

한편 삼성이 안내견 사업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삶과 안내견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는 등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장은 “안내견들은 불쌍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안내견들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것 또한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라며 안내견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길 당부했다.

안내견 입장에서는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맛있는 먹을 것과 안전한 잠자리, 애정을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하네스를 착용하고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 가정의 반려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박 교장은 끝으로 “안내견 사업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들이 필요성을 느끼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며 “안내견 학교의 철학과 정부ㆍ국회ㆍ지자체의 법과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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