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는 상인 아니어서 민법 제162조 제1항 따라야
세무사는 ‘상인(商人)’이 아니어서 세무사 직무에 관한 채권 소멸시효는 상사채권 소멸시효 3년이 아닌, 일반적인 민사채권 소멸시효 10년이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5일 세무대리 계약상 용역비 지급을 구한 상고심에서 “세무사의 직무와 관련해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해 상인의 영업활동 및 그로 인하여 형성된 법률관계와 동일하게 상법을 적용해야 할 특별한 사회경제적 필요 내지 요청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세무사를 상법 제4조 또는 제5조 제1항이 규정하는 상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상법 4조는 자기명의로 상행위를 하는 자를 상인이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5조 1항은 점포 기타 유사한 설비에 의해 상인적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자는 상행위를 하지 아니하더라도 상인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세무사의 직무에 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는 세무사법의 여러 규정에 비춰 보면, 세무사 활동은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면서 “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162조 제1항에 따라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피고는 세무사로서 원고로부터 세금신고업무를 위임받은 A로부터 원고를 위한 세금신고업무를 위임받은 후 2015년 5월 말부터 2017년 5월 26일까지 원고의 세금신고 업무를 수행했다.
피고는 원고에 대해 세무대리 업무에 따른 용역비 지급을 구하는 지급명령을 신청해 지급명령(429만 원 인용)이 확정됐다.
원고는 피고와 사이에 직접적인 세무대리 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용역비 지급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며, 지급명령 정본에 기한 강제집행 불허를 구하는 이 사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1심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세무대리 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원고가 피고에게 용역비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면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법원 판단은 조금 달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소멸시효 완성부분 385만 원에 대해서만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멸시효 미완성 부분 44만 원에 대해서는 원고 패소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세무대리 계약이 체결됐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고는 피고에게 용역비 지급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에 대하여는 ‘변호사, 변리사, 공증인, 공인회계사 및 법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의 소멸시효를 3년으로 정하고 있는 민법 163조 제5호를 유추 적용할 수 있으므로, 일부 채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1심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세무대리 계약 자체가 체결되지 않아 용역비 지급의무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은 세무대리 계약은 맺어졌으나, 소멸시효 3년이 지나지 않은 채권에 대해서만 지급 책임을 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의 소멸시효에 민법 제163조 제5호가 유추 적용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는 세무사가 상인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385만 원 부분)을 파기환송하고 원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단기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163조 제5호 및 세무사법의 제·개정 경과, 단기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는 취지에다가 ‘직무에 관한 채권’은 직무의 내용이 아닌 직무를 수행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점, 민법 제163조 제5호를 유추 적용한다면 어떤 채권이 단기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는지 불명확하게 되어 법적 안정성을 해하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에 대하여 민법 제163조 제5호를 유추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이, 민법 제163조 제5호에 따라 3년인지, 민법 제162조 제1항에 따른 10년인지에 관해 판시한 첫 번째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