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 비중 20% '중국의 반란'
정제련 시설과 기술에 공격적 투자
해외 광산 채굴권까지 싹쓸이 쇼핑
리튬ㆍ니켈 등 광물 수급 '좌지우지'
배터리 원자재 시장에서 흑연을 제외하고 광물자원 매장량이 많지 않은 중국이 선진국이 기피했던 정제·제련 시설과 기술 투자를 바탕으로 전 세계 원자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정제·제련을 위해 전 세계 광물 대부분이 중국으로 흘러가자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중국산 배터리 소재를 일정 비중 이상 사용한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등으로 견제에 시동을 걸었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의 광물 채굴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제·제련 과정에서 90%에 이르는 절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제는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금속을 뽑아내 제품으로 만들어지기 전 상태의 ‘금속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이다. 제련은 열이나 화학적 방법을 가해 광석, 천연자원으로부터 금속을 추출하는 작업이다. 채굴한 광물이 ‘쓸 만한 광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컨대 광물 상태로 채굴된 리튬이 배터리 제조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고순도의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으로 정제돼야 하는데, 정제리튬의 최대 공급원이 바로 중국이다.
현재 배터리 제조 과정은 칠레나 호주, 아르헨티나 등 원광을 다수 보유한 특정국에서 광물을 채취해 중국에서 정제와 제련을 거친다. 그 뒤 가공된 소재를 수입해 배터리 셀을 생산하고,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팩 완제품을 만드는 구조다.
과거 선진국은 정제·제련의 낮은 채산성과 오·폐수로 인한 환경오염 논란을 피하고자 관련 시설 설치를 꺼려왔다. 그 사이 중국이 대규모 제련시설에 투자하면서 자연스럽게 전 세계 핵심 광물이 집중됐다. 현재 아프리카, 호주, 중남미 국가에서 매장된 광물은 반드시 중국의 제련·가공 공장을 거쳐 가게 됐다.
광종별로 보면 광물 정제련 시장 내에서 중국은 리튬 60%, 니켈 65%, 코발트 82% 등의 점유율을 독식하고 있다. 코발트의 경우 콩고민주공화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 대부분은 중국에서 제련되고 있다. 많은 나라가 배터리 원료 수급을 원광 보유국이 아닌 중국에서 공수해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최근 중국은 아프리카와 남미 등 주요 해외 광산 채굴권까지 사들이고 있다. 중국 최대 리튬 기업인 간펑리튬은 지난달 아르헨티나 광산 채굴 회사 ‘리테아’를 9억6200만 달러(약 1조2938억 원)에 인수했다. 중국 간판 코발트 생산 기업인 화유코발트는 지난해 말 아프리카 짐바브웨 리튬 광산 업체 프로스펙트리튬 짐바브웨를 4억2200만 달러(약 5675억 원)에 사들였다.
중국 공급망 천하에 주요국들 '견제'
정제·제련시설을 토대로 중국이 전 세계 핵심 광물을 장악하자 최근 각국은 이를 제재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먼저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을 통해 견제에 나섰다.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로부터 정제 광물을 조달해야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전기차 보조금(세액공제)을 받기 위해서는 중국 제련 회사를 거쳐 나온 중간 제품의 비중을 대폭 낮춰야 한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중요 원자재에 대한 공급망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원자재법(RMA)을 도입하기로 했다. RMA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자원 생산을 확대하는 법안인 만큼 관련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상 중국 외의 대체 공급처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요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북미·유럽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본부장은 “중국을 제외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일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당장은 호주,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그나마 리스크를 줄일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