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부국장 겸 산업부장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지난달 30일 올해 10~12월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2.5원 인상했다. 애초 업계 안팎에서 예상했던 분기당 최대인 kWh당 5원이 아니라 그 절반으로 인상한 것은 민생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료는 두 자릿수가 올라 산업계는 아쉬움을 넘어 과도한 부담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산업용 전력을 가장 많이 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경제의 주춧돌인 반도체 기업들의 추가 전기요금 부담은 더 커졌다. 삼성전자(2021년 기준 1만8412GWh)와 SK하이닉스(9209GWh)는 지난해 각각 1조7461억 원, 8670억 원의 전기요금을 냈다. 이번에 대형 제조업용 전기료가 17.3% 인상되면서 인상 폭을 단순 계산한다면 삼성전자는 연간 3000억 원, SK하이닉스는 1500억 원가량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정부는 이들 기업이 전기요금 우대정책으로 혜택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이 70%가 채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이 낮은 것은 원래부터 저렴했던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전 세계 에너지 가격 폭등 때문이다.
이번 전기료 인상에 대해 산업계는 할 말이 많다. 산업계는 에너지 가격 폭등 전인 2016~2018년 산업용 전기료의 원가회수율은 100%를 넘었지만, 오히려 전기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컸다. 또 산업용 전기료 책정에는 일부 부담하는 송전망 구축비용이 빠진 데다 고압으로 전력을 받기 때문에 송배전 비용도 낮고, 전력 사용 패턴도 일정해 예비 전력을 위한 추가 설비도 불필요해 주택용 전기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기업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이번 전기료 인상에 대해 속앓이를 하면서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어 감당하기 힘든 정도라고 토로한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대기업에도 큰 부담이다. 단순히 전기료 인상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에 가입하면서 향후 천문학적 금액의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가 바탕이 돼야 추가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오히려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지난해 확정한 30.2%보다 8.7%포인트 줄인 21.5%로 축소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오죽했으면 글로벌 RE100 캠페인을 총괄하는 샘 키민스 클라이밋그룹 대표가 모 언론매체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비중 축소로 한국 기업들이 수조 달러의 투자를 놓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을까.
미국이나 유럽,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국가다. 이들 국가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재생에너지공급계약(PPA)을 체결할 수 있어 RE100 체결로 인한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0%의 4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보 자체가 어려운데 미국, 유럽, 중국 기업들과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라고 하니 대기업들은 답답할 따름이다. 그마저도 정부 지원 자체도 미미하거나 오히려 재생에너지 목표치 축소로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들에 전기료 인상 부담까지 지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요 선진국도 에너지 폭등으로 산업용 전기료를 인상하고 있지만 자국 산업 경쟁력 보호를 위해 기업에 보조금을 주거나 세제 혜택을 검토하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정부의 정책이 민생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칫 기업을 죽일 수 있는 정책으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정책으로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