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기아 보이즈' 유행 확산하는데…우리나라도 안전 지대 아냐
국토부, 뒤늦게 실태 조사 착수…현대차, 국토부에 "시장 조치 계획 없어" 보고
김병욱 의원 "전 제조사 현황 파악해야…도난방지 시스템 유상으로라도 제공해야"
해외에서 특정 도난방지 장치가 없는 현대ㆍ기아차만 골라 절도행각을 벌이는 이른바 '기아 보이즈'가 놀이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차량 10대 중 2~3대에는 이 장치가 없는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 운행용으로 팔린 현대ㆍ기아차 총 1147만 대 중 '이모빌라이저'를 장착하지 않은 차량은 272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모빌라이저란 열쇠에 내장된 암호와 키박스에 연결된 전자유닛의 정보가 일치할 때만 시동을 걸 수 있게 한 도난방지 장치다. 자동차 시동 방식이 대부분 버튼식으로 바뀌면서 효용성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열쇠를 복제하거나 키박스에 다른 물질을 삽입해 강제로 시동을 걸 수 있어 차량 절도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모빌라이저가 없는 현대ㆍ기아차를 훔쳐 타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외신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미국 시카고에서 도난 신고가 접수된 현대ㆍ기아차는 601대다. 세인트루이스에서도 8월까지 신고된 차량 도난 신고 3970건 중 48%가 현대ㆍ기아차였다. 지난해 7%에서 7배가량 급증했다. 특히 틱톡,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대ㆍ기아차의 특정 차량을 훔치는 일명 '기아 보이즈(KIA boyz)'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판매된 차량 중 이모빌라이저 미장착률은 현대차가 24.2%, 기아차가 23.2%다. 비교적 신형에 속하는 차량 중 상당수에 이모빌라이저가 장착되지 않은 것이다. 2013년 이전에 판매된 구식 차량까지 더하면 미장착률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와 업계는 관련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국내 기아 보이즈 대책'에 대한 김 의원실의 질의에 "이모빌라이저가 장착되지 않았더라도 4개 도난방지 기능 중 한 가지가 탑재돼 있고 정상적으로 작동될 경우 리콜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이모빌라이저를 포함해 △조향기능 억제 △변속기능 억제 △변속장치의 위치조작 억제 △제동장치 억제 등 5개 중 한 개 이상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토부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을 통해 차량 도난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지시했다"며 "문제 원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필요하면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도 국내에 기아 보이즈가 상륙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국내 기아 보이즈 대책과 관련해 국토부에 제출한 자료에서 "(우리나라는) CCTV 및 블랙박스 설치율이 높아 차량 도난 등 범죄율이 낮다"며 "차량 도난 가능성이 작아 시장 조치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는 미국에서 스티어링 휠 잠금장치를 홍보하거나 유리 충격 감지 센서를 유상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 중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의원은 "아직 국토부가 아무런 조사를 안 한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빨리 전 제조사를 통해 현황 파악부터 하는 것이 온당하다"며 "제조사 측에서는 도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빨리 개발해서 유상으로라도 고객에게 알리고 설치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