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에너지 포럼에 등장해 “유럽이 원하면 가스관 밸브를 다시 열 수 있다”며 “공은 유럽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과 2는 지난달 발생한 폭발 사고로 4개 해저관 중 3개가 손상을 입었다. 남아 있는 1개 해저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할 뜻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유럽은 지난달 26~27일 잇달아 발생한 해저 가스관 누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수중에서 발생한 사고여서 원인과 배후를 특정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사고 초기부터 ‘사보타주(고의적 파괴행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러시아를 의심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벌인 일이라며 화살을 돌렸다. 미국은 정확한 물증이 나올 때까지 섣부른 추정을 경계하고 있다.
이례적인 해저 가스관 폭발을 두고 전문가들의 분석이 분분했다. 독일 의회 국방위원장인 마리 아그네스 스트락 짐머만 의원은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인을 당황시키려고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군사작전과 심리전을 결합한 전술을 의미한다.
푸틴의 이날 발언을 보면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푸틴은 “노르트스트림2의 2개 관 중 1개는 가스 공급을 위한 압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관의 공급 용량은 연간 270억㎥ 규모”라고 친절히 설명까지 덧붙였다.
푸틴의 가스 공급 재개 제안에 유럽은 콧방귀를 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공급 중단 직격탄을 맞은 독일은 “러시아는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가스 공급국이 아니다”라며 “가스 누출 사고 이전부터 흐름은 이미 멈췄었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는 시설 보수를 이유로 지난달 초 노르트스트림1 가동을 무기한 중단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지난해 말 완공됐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제재 대상이 되면서 한 번도 가동되지 못했다.
독일이 단호하게 맞섰지만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이를 잘 아는 러시아는 “현재 가스 저장 용량을 고려하면 유럽이 겨울을 견딜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우샤코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푸틴과 대화는 절대 없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절대 안 된다는 말은 없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해 대화 의지를 내보였다.
우크라이나는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가 탈환 지역을 넓히며 올 겨울 내내 공격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검은 속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게 한 두번도 아니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출구를 찾는 걸 수도, 더 큰 위협을 위한 명분을 쌓는 걸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푸틴이 절박한 상태고,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