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옥고를 치른 고(故) 장준하 선생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 재차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1부(재판장 홍승면 부장판사)는 13일 장 선생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7억80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장 선생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하며 재야ㆍ종교계 인사, 지식인과 학생 등을 모아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영장 없이 체포ㆍ구금됐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장 선생은 복역하던 중 같은 해 12월 협심증에 따른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75년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남 장호권 씨는 장 선생이 무죄라는 취지로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2010년 긴급조치 1호가 위헌ㆍ무효라고 판단했다. 장 선생 사건 재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도 2013년 무죄를 선고했고, 헌법재판소도 같은 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유족들은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두고 '고도의 정치행위'라며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는 대법원 판단을 뒤집고 "긴급조치는 발령 자체가 위법"이라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대통령이 애초부터 위헌ㆍ무효인 긴급조치를 고의 및 과실로 발령하고 피해가 발생한 때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으면 정의 관념에 반한다"며 장 선생 유족에게 국가가 7억8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그 위반 행위에 대한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고 실제로 피해가 구체적으로 발생한 경우 수사, 재판, 형의 집행과 분리해 발령행위 자체만을 판단해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