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긴축으로 크레딧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 가운데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 시장마저 신용경색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최근 금리 인상과 강원도 ABCP 지급 불이행 등으로 투자 심리 위축이 가속화된 영향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선호해오던 단기자금 시장마저 얼어붙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급등세를 이어오던 CP91일물 금리는 지난 14일 전일보다 0.53%P 오른 3.780%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은행의 ‘빅스텝’이 있었던 12일에는 하루 만에 1%대 가까이 뛰었다. CP91일물은 올해 5월까지만 해도 2% 초반을 유지해오다 9월 들어 치솟기 시작했다.
단기 자금 시장은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단기로 운용자금을 조달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곳이다. 장기에 비해 기업 부담이 적어 단기자금 시장은 매년 꾸준히 성장해왔다. CP와 전자단기채권(전단채) 발행 잔액은 2019년 237조6000억 원이었으나, 2021년 말 300조 원을 넘어선 뒤, 10개월 만에 16조 원이 증가한 316조70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단기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급등하거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부도 위험까지 처할 수 있다는 불안이 확대된다.
금리 인상과 투자심리 악화로 발행도 쪼그라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9월 16일~10월 15일) ABCP 순발행액은 마이너스(-) 1조1858억 원으로 이전 달(-1조1398억 원)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다. 지난해 같은 기간(5조1515억 원)과 비교해도 확연히 적은 수치다.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라는 조달 금액보다 만기가 다가와 상환한 금액이 더 크다는 의미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그만큼 악화한 셈이다.
여기에 하반기 북클로징도 단기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시장 변동이 심화하자 기관들은 재빨리 ‘북클로징’(장부 마감)에 나서면서 올해 투자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의 급격한 상승은 장기금리보다 단기 금리 상승에 더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라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단기자금의 여유는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4분기 크레딧 시장은 북클로징으로 인한 수급 공백이 존재하지만 올해는 특히 심하다"라며 "이미 3분기부터 수요가 적어진 상황에서 부동산 금융에 대한 불안과 함께 강원도의 ABCP 지급 불이행으로 단기 시장은 빠르게 냉각됐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실제 기업들이 체감하는 심리는 지표상 확인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인식이다. 이한구 금융투자협회 채권전문위원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 시장에는 단기 이동 자금이 없다보니 CP나 전단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유동 자금이 없어서 ‘사자’가 없다. 실제로는 더 심각하다고 본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부터라도 한계에 부닥친 기업들을 서서히 정리해나갈 시점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이 위원은 “그동안 저금리로 생명을 유지해왔던 한계기업들도 이제는 금리가 올라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 시장에서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라며 “다만 한꺼번에 진행하면 무리가 있으니까, 이제부터 서서히 진행하는 게 좋아 보인다. 이자비용도 낼 수 없는 적자기업을 계속해서 끌고 갈 수는 없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