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도 여전히 유효…금리인상기 대응책 한계, 추가 대책 한두번 더 내놔야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가 촉발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나아가 채권시장 불안감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대응책을 내놨다.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비교적 늦은 감은 있지만 더 늦지 않게 대응책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급한 불은 끄겠지만 추가 대책이 한두번 더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2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후 나온 조치들을 보면 대책은 주로 시장 안정화를 위한 유동성 공급 및 지원대상 확대로 집중됐다. 당장 24일부터 채권시장안정펀드 여유재원 1조6000억원을 투입해 회사채·CP 등 만기도래 차환물량에 대한 매입에 나선다. 아울러 83개 금융회사에 대한 추가 캐피탈콜(추가 수요가 있을 경우 투자금을 집행하는 방식) 절차를 11월초 완료할 방침이다.
산업은행 등의 회사채·CP 추가 매입여력을 기존 5조5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하고, 특히 매입대상 증권에 일반기업이 발행한 A3등급 이상 CP·전단채 외에도 금융회사 발행 CP 등을 포함했다. 아울러 필요시 매입대상을 적극 확대할 예정이다.
다만,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요구가 컸던 내용들이 빠지면서 시장 안정에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우선, 채권시장은 한국은행의 빅스텝(50bp 금리인상, 1bp=0.01%포인트) 종료 및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작년말 종료된 저신용 회사채 등 매입기구(SPV) 대출 재개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다만,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번 사태로 빅스텝의 전제조건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이번 시장안정 방안은 신용경계감에 따른 미시적 대책이다. 거시 통화정책의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생각 안한다”고 답했다. 또 “SPV (대출재개) 등 다른 방안은 빠져있다. 금융시장 등 변동성을 살펴보고 필요시 금통위에서 추가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정상화 이상 조치 및 은행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 규제 기준 하향 등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앞서, 금융위는 현재 은행 통합 LCR 규제비율 정상화 계획상 올 12월말까지 92.5%였던 것을 6개월 연장한 바 있다. 다만, 최근 빠른 기준금리 인상에 은행으로 예금이 몰리면서 예대율을 맞추기 위해 은행의 은행채 발행이 봇물을 이뤘다. 9월에만 25조8800억원어치의 은행채가 발행돼 월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채권시장에 수급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금의 조치가 끝이 아니다.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시장과 대화하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며 “필요시 LCR 및 예대율 규제에 대한 조치도 해나가겠다”고 답했다.
최근 당국의 대응책이 아마추어 같고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추 경제부총리는 사실상 몸을 낮췄다. 이에 대해 추 경제부총리는 “지적사항을 잘 경청하고 시장 평가를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책에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산운용사 대표는 “첫번째 종합대책이라는 점에서 그 정도의 의미가 있겠다”면서 “한두번 더 대책이 나와야 실질적으로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외국인들이 레고랜드 사태를 생각보다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 특히, (안전자산인) 국채시장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은이 시장 불안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은행계 증권사의 채권담당 본부장은 “문제가 확산할 경우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것들이 뭔가를 체크 중이었다. (저희 증권사와 달리) 비은행계 증권사들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었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유동성 공급이 큰 것 같다. 급한 부문들은 조금은 가라앉으며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한은의) 무제한 RP 등 유동성을 푸는 방안은 빠졌다. 코로나19 당시와 달리 금리 인상기인데다 (인플레 우려에) 유동성을 풀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