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다른 복합위기 시대…OECD 보고서엔 더는 해법 없다"
"원·달러 환율 1500원 선 돌파할 듯…방향만 정해지면 속도는 빨라져"
"타다금지법 같은 법, 시장 혁신 막는다…원격의료·플랫폼 과감한 규제 혁신 필요"
"노동유연화로 기업 역동성 살려야"
"정규직 1등 시민 깨려면 비정규직 수당 필요"
세계은행 출신의 국제 경제 개발 전문가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OECD의 정형화된 틀을 넘은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해법은 OECD 보고서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제 공조가 무너지고 글로벌 공급망 등 시장 기틀을 흔드는 변화가 일어나는 만큼, 한국도 대응 강도를 크게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인회계사인 조정훈 의원은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후 세계은행(WB)에서 15년간 근무한 경제 전문가다. 그에게 현재의 위기 강도를 묻자 그는 “2008년 금융 위기보다 더 어렵다”며 말문을 뗐다. 특히 ‘탈세계화(de-globalization)’의 강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자국 보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이번 경제 위기는 2008년 이후 촉발된 ‘탈세계화’라는 후유증을 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조 의원은 자신의 세계은행 근무 시절을 떠올리며 “(그 당시) 아무도 이 맹렬한 세계화의 속도, (적어도) 방향이 꺾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2015년 세계 무역량 총량이 꺾인 당시에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무역량은 당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며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세계화가 2015년부터 서서히 식기 시작했고, 코로나 팬데믹이 (탈세계화를) 가속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그간 경제 위기를 극복했던 ‘방정식’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봤다. 조 의원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큰 틀에서 우리가 펼쳐온 경제 정책의 기준과 가정법들이 무너지고 있다”며 “흔들리는 세계화·지역화 흐름, 미국 중심의 무역, 작동되지 않는 국제 공조까지. 이제는 세계질서 유지의 기본 틀이었던 유엔(UN)도 유명무실해지면서 이제는 희화화되고 있다. 세계은행 역시 글로벌 경제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불안한 외교 정세도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꼽았다. 외교가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기를 출범시키면서 ‘한미일 대(對) 북·중·러’라는 동북아 신(新)냉전 구도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조 의원은 “절대적 외생변수가 초래한 경제 위기”라며 “이제는 ‘위기 여부’를 따질 게 무의미하다. 수많은 가정(if)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 플래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킹 달러’ 현상 속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선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가 환율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맞지만, 환율은 방향성이 정해지면 가속도가 붙는다. 1500원 선도 금세 뚫릴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물가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데 초 양극화된 한국경제에선 너무 큰 타격으로 돌아온다. 대표적으로 주택시장의 폭락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환율, 물가는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물풍선처럼 위태로운 상태다. 하나만 안 터져도 감사한 상황”이라며 “환율, 물가에 걸리는 부하를 모니터링하고 수시로 상대적 평가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위기 해결보다 ‘관리’에 방점을 찍고 고물가, 가계부채, 부동산시장 등을 아우르는 한국은행의 정무적인 판단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 의원은 시장이 정부 대책에 목을 맬 때 “정부도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부도 긴급하게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최근 급속히 악화한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조 의원은 “위기 상황에선 기업들이 각자의 ‘생존 본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법인세 조치만으로는 약하다. ‘규제 개혁’ 선물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면적인 규제 개혁이 필요한 시장에는 원격의료, 플랫폼 경제 등을 꼽았다. 그는 시장 성장을 막은 대표적인 규제에 ‘타다 금지법’을 꼽으면서 “혁신을 막는 법을 없애야 한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은 경계하되 중소기업들이 다양한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정말 규제가 없다고 할 수준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시장 혁신 역시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노동 유연화’를 기업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은 정규직이 1등이고 그 아래 비정규직, 일용직, 플랫폼 노동자가 계층화됐다. 해고가 어려우니 고용은 더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도 사람을 고용해도 될 일을 계속 ‘자동화’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결국 비정규직도 정규직만큼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도 제도도 손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받는 여러 수당이나 휴일 같은 것에 손해를 볼 경우에는 그것을 보완하는 일종의 ‘보완 수당’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래야 소득에서 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의 계층 구분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위기 이후 심화되는 양극화를 대비하기 위해선 “중부담 중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적 보편 증세’로 재원을 마련하자는 얘기다. ‘덜 걷고 덜 쓰기’라는 현 정부의 조세 정책에 대해선 “부자 감세 아래 재정 건전성을 강화할 경우 조세와 재정의 재분배 효과는 더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소득세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구간(과세표준)의 시작점을 낮추거나 세액 공제 혜택도 간소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