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애인 만들기

입력 2022-10-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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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내과전문의

“애인을 만드셔야겠네요.”

내 말에 아주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남편이 요즘 혈당조절이 안 되고 합병증도 생겨 걱정인 터에 애인까지 만들라는 의사의 조언에 적잖이 놀란 눈치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얼굴이 달아오른 그분의 모습에 실토할 때가 된 것 같아 설명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여러 해 앓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병에 무감각해지고 생활 습관이 흐트러질 수가 있다. 마치 오래 산 부부처럼 데면데면해지고 소홀히 대하기 마련인데 그러다간 소리 없이 진행하는 합병증으로 큰 고생을 하게 된다. 남녀가 처음 호감을 느끼고 연애를 시작할 땐 자주 보고 싶고, 상대방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또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연인 간에 사이가 좋게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질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들은 아직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아니 무덤에 갈 때까지 손을 꼭 잡고 가야 하는 질병이다. 어쩌면 부부보다 더 가까이, 더 오래 곁에 둬야 하는 존재다. 그러기에 병을 원수처럼 멀리하고 미워하기보단 친구나 애인처럼 잘 알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혈당이나 혈압을 잘 조절하고 합병증을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당뇨병 합병증을 대단위로 조사한 DCCT(Diabetes Control and Complication Trial) 연구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군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7.7년의 시력 보존, 5.8년의 말기신부전으로의 진행 지연과 5.6년의 하지 절단 예방효과가 있고 5.1년의 수명 연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질병을 적으로 두기보다 동반자로 생각하며 관리할 때의 이점이 너무 큰 것을 알 수 있다.

만성질환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삶을 살다 보면 답도 없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오래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 간이나 직장 내에서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이런 문제에 직면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꼭 적으로만 만들어 미워할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전환해 문제의 해결책에 접근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은 아닐지.

애인 만들기란 제목에 매서운 눈초리로 뚫어지게 화면을 쳐다보던 아내가 피식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래도 애인은 절대 안 돼!”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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