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 때문 ‘동정론’에서 오너가 무능경영 ‘비판론’으로
‘가나초코우유’로 유명한 유가공 전문 기업 푸르밀이 적자 누적으로 내달 사업을 접고 정리해고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은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관련 글을 올리며 알려지기 시작했죠. ‘가나초코우유’와 ‘비피터스’, ‘바나나킥우유’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소비자들은 저마다 푸르밀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공유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하루만에 ‘동정’ 여론이 ‘공분’으로 변했습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우유 시장 쇠퇴가 주요 이유인지 알았지만, 언론을 통해 오너 일가의 무능력과 도덕적 해이 등이 사업 종료 이유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입니다.
명예퇴직을 사업 종료 명분으로 쌓았다는 의혹과 법인세 감면 혜택 유지를 위해 폐업이 아니라 사업 종료를 선택했다는 등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오너 일가에 대한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푸르밀 사업 종료와 일련의 논란은 지난 17일 직장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지금까지 푸르밀 제품을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글에서 시작됐습니다. ‘가나초코최애’라 닉네임의 이 직원은 “(푸르밀이) 이리저리 치이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문을 닫는다”며 “가장 아쉽고 속상한 건 우리 직원들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추억이었다’고 말해주는 소비자님들, 지금까지 푸르밀 제품을 사랑해주셔서 참 고맙다”며 작별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 글은 1200개가 넘는 공감을 받고, 댓글만 곧바로 400여 개가 달리는 등 그야말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렇게 추억이 사라진다”,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이라는 응원을 보내며 이젠 볼 수 없는 푸르밀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푸르밀 측은 곧바로 사업 종료에 대해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한다”면서 “당초 50일 전까지 해고를 통보해야 하나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정리 해고를 결정하게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1978년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한 푸르밀은 45년의 역사 가진 기업입니다. 그만큼 추억을 함께 하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유제품 의존도가 높은 사업 구조와 우유산업 저성장 영향으로, 매출 감소와 영업적자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오너 일가의 무능력과 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올라 푸르밀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죠. 업계 안팎에서는 적자 원인이 오너의 경영 무능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커졌고, 노조는 전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불법 해고를 진행한다며 반발했습니다.
최근 연속된 적자의 첫 해인 2018년은 신준호 당시 푸르밀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취임해 오너 체제로 전환된 연도라는 사실이 설득력을 더했습니다.
일방적 사업 종료가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논란도 있습니다. 푸르밀은 올해 1월 위기 극복을 위해 직원 7명의 명예 퇴직을 단행했는데, 전직원 해고 전에 해야하는 ‘해고 회피 노력’의 명분을 쌓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신 전 회장이 사업 종료 한창 전인 올해 초 퇴직금 30억 원을 받고도, 서울 문래동 소재 본사로 출근해 업무 지시를 내렸는데요. 사업 종료 전에 퇴직금을 챙기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폐업’이 아닌 ‘사업 종료’를 선택했다는 점도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푸르밀은 그동안의 적자로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아왔는데, 법인 청산에 나서면 그동안의 감면분을 반납해야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을 모두 정리한 후에도 법인을 계속 유지할 경우 감면분을 보전할 수 있죠.
최근 현금성 자산이 대폭 늘었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금및현금성 자산은 45억 원으로 최근 5년 내 최고 수준입니다. 매해 적자 폭이 커진 회사인데 말이죠.
오너가의 방만 경영 비판은 왜 나온 것일까요?
신 전 회장은 2019년부터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매화리 일대에 개인 법인을 설립해 새우 양식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해당 법인의 공과금 납부와 회계 장부 작성 등 재무 관리 일체를 푸르밀 총무부 직원에 맡겼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 업무는 지난해 신 전 회장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도 계속됐다고 합니다.
최근엔 본사 부지 개발설도 등장했습니다. 오너 일가는 가족 기업 대선건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회사가 서울 문래동 부지를 개발해 차익을 실현하려고 한다는 ‘썰’ 입니다. 작년 감사보고서에 계상된 푸르밀의 토지 공시지가는 472억 원입니다. 실거래가로는 약 8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개발에 따른 이익도 적지 않다는 것이죠. 다만, 본사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어 일조권 보호에 따라 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김성곤 푸르밀 노동조합 위원장은 “모든 적자의 원인이 오너의 경영 무능함에서 비롯됐지만, 전직원에게 책임 전가를 시키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며 “도의적인 책임도 없고 본인들의 입장만 취하는 신준호, 신동환 부자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사업 종료 통보로 푸르밀 직원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 50여 명과 화물차 기사 약 100명에 더해 푸르밀에 원유를 제공하는 낙농가도 직접 타격을 입었습니다.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푸르밀 제품을 취급하고, PB(자체브랜드) 제품을 공급받던 유통업체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 이들 유통업체도 대체 업체 물색에 나서며 대안 마련에 분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