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러시아가 준비하고 있을 것”
우크라이나전쟁이 8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가 뜬금없이 '더티밤'을 언급해 전 세계의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 프랑스, 튀르키예 국방장관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하며 "우크라이나가 분쟁지에서 더티밤을 쓸까 우려된다"고 언급했는데요.
그간 핵무기 사용이 우려됐던 러시아가 역으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쓸 수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이죠. 러시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크렘린궁과 외교부까지 나서서 '더티밤 여론전'에 뛰어들었죠.
서방 국가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습니다. 같은 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3개국 외교장관은 공동 성명을 내고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고 일축했는데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24일 "러시아가 전달한 정보를 서방이 불신한다고 해서 더티밤의 위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죠. 러시아군 당국자의 의미심장한 발언도 나왔죠. 러시아 국방부 화생방전 방어 사령관 이코르 키릴로프는 이날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개발이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피폭에 대비해 문제없이 전투할 수 있도록 군 자원을 준비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더티밤은 폭발할 때 공기 중에 방사성, 생물학적, 화학물질이 흩어지도록 하는 재래식 폭탄으로 일종의 방사성물질살포 장치(RDD)입니다. 핵폭탄에 사용되는 고도의 정제 방사성 물질 대신 병원이나 원자력 발전소에 쓰이는 방사성 물질을 넣기 때문에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과 같은 핵 장치보다 만들기 쉽다고 합니다. 핵폭발과 같은 위력은 없지만 광범위한 지역을 방사능을 오염시킬 수 있어서 심리적 타격은 더 큽니다.
이에 대해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 "직접적 방사선이나 오염된 물질 흡입, 섭취로 특정 지역과 그곳 사람들 방사성 물질에 노출시킨다"면서 "목적은 노골적인 대량학살보다는 공포감 조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무기는 2005년 '핵에 의한 테러리즘 행위 방지에 관한 국제조약'을 통해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이에 이제까지 더티밤이 사용됐다는 보고는 아직 없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2002년 알카에다 일원이 더티밤 제조와 사용을 기획했지만, 미국 정부에 붙잡혀 미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왜 갑작스럽게 '더티 밤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요.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늦추거나 중단하고, 위협을 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을 약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러시아가 핵 카드를 쓰기 위한 '거짓 깃발' 작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죠.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주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역 4곳의 합병 과정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새 영토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한 가지 의미"라면서 "러시아는 이 모든 것을 준비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젤렌스키의 대통령 말대로 오히려 러시아가 '더티밤'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ISW를 비롯한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현재까지는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티밤이 적군뿐만 아니라 자국 군대는 물론 점령지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그러한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거죠.
하지만 수세에 몰린 푸틴이 어디까지 행동에 나설 것인지는 푸틴만 아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