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 조정세가 짙어지면서 수도권 내에서 공시가와 맞먹거나 밑도는 거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시가는 정부가 매년 토지 및 건물에 관해 산정해 공시하는 가격으로, 통상 실거래가보다 낮게 책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공시가 역전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쌍용플래티넘S’ 전용면적 18㎡형(3층)은 이달 6일 7600만 원에 거래됐다. 해당 가구의 올해 공시가는 8090만 원으로 책정됐다. 공시가 대비 약 6% 내린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도봉구 창동 ‘창동주공4단지’ 전용 49㎡형(8층)은 이달 6일 4억7000만 원에 팔렸다. 이곳의 올해 공시가격은 4억6000만 원으로, 공시가와 비슷한 수준까지 가격이 낮아진 셈이다. 이곳 공시가는 지난해 3억5700만 원에서 올해 4억6000만 원으로 28.85%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실거래가는 지난해 7월 신고가 거래액이었던 7억2900만 원과 비교하면 35.52% 하락했다. 실거래가 하락폭이 공시가 상승폭을 역전한 것이다.
서울 도심권 주요 단지 역시 공시가 역전현상 우려가 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59㎡형(2층)은 9월 14일 16억1000만 원에 거래됐다. 이 단지 해당 평형 신고가였던 7월 21억9000만 원과 비교하면 14개월 새 5억8000만 원 내렸다. 이곳 현재 공시가는 13억2700만 원으로, 실거래가가 공시가에 근접해지고 있다.
경기와 인천 역시 하락거래가 이어지면서 공시가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더샵센트럴시티’ 전용 84㎡형(21층)은 이달 21일 6억4000만 원에 거래됐다. 올해 이곳의 책정 공시가는 7억400만 원이다. 공시가 대비 6400만 원 낮은 가격에 팔린 것이다.
경기 동탄신도시 내 화성시 청계동 ‘동탄역센트럴푸르지오’ 전용 59㎡형(15층)은 이달 26일 4억5000만 원에 팔렸다. 책정 공시가인 4억6000만 원 대비 1000만 원 내렸다.
지난해 수도권 아파트값은 전년 대비 16.28% 상승했지만, 올해 들어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누적기준 수도권 아파트값은 3.3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울은 2.47%, 경기는 3.66%, 인천은 4.44% 각각 떨어졌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아파트 실거래가가 공시가보다 낮게 거래됐다는 것은 분명한 하락장의 신호 중 하나”라며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위축돼 심각한 상황임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종합부동산세 개정안도 통과되지 않아 세 부담 등 우려가 커지고 있어 공시지가 현실화 비중을 낮추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현재 조정세로 봤을 때 이런 역전현상이 심화할 수 있고, 공시가는 보유세 등 세금 산정에 영향을 주는 만큼 조세 저항 등의 우려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현실화 달성 기한을 늦추거나 현실화율을 낮춰야 한다. 현실화율 80~85% 수준이 상승기나 하락기 모두 적절하게 방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