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분열, 경기불황 극복 등 과제
보우소나루, 민주화 이후 재선 실패한 첫 현직 대통령
브라질 대표 좌파 정치인 룰라가 돌아왔다. 12년 만에 대통령을 다시 맡게 된 그는 분열된 사회 봉합이라는 과제를 떠안고서 4년간 브라질을 이끌게 됐다. 시장에선 경쟁자였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승복 여부에 집중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꺾고 차기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각축전을 벌였던 승부 향방은 개표율 98.86%가 돼서야 결정됐다. 브라질 선거법원은 “룰라 후보가 50.83%, 보우소나루 후보가 49.17%의 득표율을 기록해 룰라 후보가 당선인이 됐다”고 공표했다. 룰라의 최종 득표율은 50.9%로 집계됐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두 번에 걸쳐 대통령에 올랐던 룰라는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승리 연설에서 “오늘 유일한 승자는 나도, 노동당도 아닌 브라질 국민 여러분”이라며 “정당과 개인의 이익과 이념을 넘어선 민주주의 운동의 승리”라고 밝혔다. 이어 “이날 (투표에 참여한) 국민은 배고프고 직업이 없고 임금이 부족하다는 상황을 보여줬다”며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 가계 부채 재조정을 통해 경제 수레바퀴는 다시 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식품 생산국이자 동물성 단백질에 있어 최대 생산국”이라며 “전 세계에 수출할 수 있다면 브라질 국민은 매일 세끼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다신 한 번 우리 정부의 최우선 공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저소득 가정을 우선으로 하는 부양 프로그램을 재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애초 룰라의 연설에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발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다만 과거 룰라가 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을 재개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교육 관련 종목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보우소나루 정권하에 민영화를 추진했던 국영기업들은 불안감이 커졌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보우소나루의 불복 여부도 변수다. 그는 아직 승복 연설을 하지 않고 있다. 컬럼비아스레드니들의 사라 글렌던 선임 애널리스트는 “만약 보우소나루가 승복한다면 시장은 랠리를 보일 것”이라며 “반면 승복을 거부한다면 불확실성에 투자자들이 매도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 대표 좌파 정치인인 룰라는 대통령 재임 시절 중산층 비율을 높이고 광범위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 호황을 주도했다는 평을 받는다. 퇴임할 때 지지율이 80%를 넘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브라질에서 드러난 거대한 부패 스캔들에 룰라 정권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지고 룰라마저 구속되면서 상황도 달라졌다. 그 여파로 당시 극우 정당 후보였던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올랐다.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기불황 문제를 떠안았다. 이 과정에서 선동적인 연설과 코로나19 방역 논란, 15년 만에 최악으로 기록된 아마존 벌채 등으로 신임을 잃었다. 이번 패배로 그는 1985년 브라질 민주화 이후 재선에 실패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도 쓰게 됐다.
이번 투표 결과에서 보듯 브라질은 여전히 정치적 이념으로 분열된 상황이다. 정치 평론가인 토마스 트라우만은 “룰라는 극도로 분열된 국가를 물려받고 있다”며 “그가 맞은 거대한 도전은 국가를 안정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룰라의 승리로 중남미에 불고 있는 ‘2차 핑크타이드(좌파물결)’가 완성되게 됐다. 앞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등 다른 중남미 핵심 국가들에서도 좌파 성향의 인물이 당선됐다. 과거 중남미에 좌파 정권이 대세였던 당시 중국이 진출 속도를 냈던 만큼 중남미와 전통적으로 가까웠던 미국으로선 골치 아픈 상황에 놓였다.
스페인 유력 일간 엘파이스는 “중남미 5대 경제국이 처음으로 좌파에 의해 통치될 예정”이라며 “이번 브라질 대선은 중남미에 지정학적 관계를 넘어서는 차원의 일”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