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며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기소된 버스기사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A 씨는 2018년 인터넷 공간에서 버스노조 간부 B 씨와 C 씨를 “버스노조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구속 수사하라”는 글을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17년 “채용 비리를 경찰에 제보한 뒤 B 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언론사에 허위 제보를 해 B 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았다.
1심과 2심은 언론 허위 제보를 모두 유죄라고 봤다. 그러나 인터넷에 ‘악의 축’이라는 말을 쓴 모욕 혐의에 대해선 유‧무죄 판단이 갈렸다.
1심은 A 씨가 노조 위원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집회 개최를 공지하면서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 부차적으로 썼고, B‧C 씨를 비판한 내용이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무죄로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이 표현이 모욕적이라며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악의 축’은 피해자들의 사회적인 평가를 저해할만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면서도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A 씨가 노조 집행부의 공적인 활동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담은 인터넷 게시글을 작성하면서 쓴 표현이니 위법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노동조합 조합원은 노조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하고 내부 문제에 대해 의견 개진을 비롯한 비판 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조합의 운영 등에 대한 비판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악의 축’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등을 일컬어 사용한 이래 널리 알려지면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대방 측 핵심 일원’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지나치게 모욕적‧악의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