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애 예능’ 전성시대입니다. ‘환승연애’, ‘솔로지옥’, ‘나는 솔로’, ‘체인지 데이즈’, ‘돌싱글즈’ 등 다양한 연애 프로그램이 방송을 휩쓸고 있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자도, 커플들의 사연도 날로 다양해집니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출연자들의 자기 홍보(PR) 또한 발전하고 있는데요. 요즘 화제라 할만한 키워드는 ‘재력 과시’입니다.
연애 프로그램은 대개 일면식 없는 이성과 만나 자기 소개를 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신분을 밝히기도 하고, 취미나 좋아하는 것을 설명하기도 하죠.
최근에는 재산을 과시하는 출연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품 옷과 가방을 착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솔로지옥’ 출연자인 유튜버 프리지아는 ‘가품 착용’ 논란이 일기 전까지 프로그램에서 착용한 명품들로 화제가 됐었죠.
그러나 이제는 자기소개 시간부터 소득과 재산을 자랑합니다. 지난해 7월 첫 방송된 ‘나는 솔로’는 후반 기수로 올수록 직접적인 ‘재력 어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변호사, 의사, IB(투자은행) 맨 등 화려한 직업을 공개한 출연자부터, ‘사업 연 매출 300억 원’, ‘주식으로 연봉 이상 수익’, ‘1년에 3~4개월 해외 여행 갈 수 있는 수준’ 등 구체적인 금액을 언급하는 출연자도 많습니다.
11기 ‘영식’은 “재테크에 관심도 많고 주식 좋아한다”며 “월급은 거들 뿐이고 주식으로 낸 수익이 연봉 이상으로 많이 나고 있다”고 강남 신축 아파트 입주를 생각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죠. 이렇게 자세히 자신의 소득을 설명한 것에 대해서는 “원래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한다. 근데 여기 와서는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의 자기 소개에 초조해 졌다는 건데요. 이처럼 연애 프로그램 속 ‘재력 과시’는 과열 양상까지 보입니다.
출연자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의 부(富)를 과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배우자 조건으로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재력이 아님을 생각하면 독특합니다. 결혼 정보회사 가연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2030 청년이 가장 포기할 수 없는 배우자 조건으로 꼽은 것은 성격과 가치관입니다.
2021년 오픈서베이를 통해 25~39세 청년 1000명에 대해 진행한 ‘MZ 세대 미혼남녀가 원하는 배우자상’ 조사에서는 남성의 89.2%, 여성의 89.4%가 배우자의 성격과 가치관을 중요하다고 응답했죠.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22년 7월 19세 이상 34세 이하 미혼 청년 1047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의 연애, 결혼 그리고 성 인식 조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이 연애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항은 △내적성향(87.9%) △신체적 조건(66.4%) △경제적 조건(37.6%) △사회적 조건(30.9%) 순으로,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입니다.
반면, 연애·결혼을 포기하는 이유에는 경제 문제가 있습니다.
앞선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조사에서, 현재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청년은 63.6%였습니다. 또 연애에 부정적인 청년들의 58.7%는 연애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여유가 없어서’를 꼽았습니다. ‘여유가 없다’는 ‘관심이 없어서’, ‘상대가 없어서’ 등을 제치고 연애하지 않는 이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여유’는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종합하자면, 연애 상대에 대해 고려하는 최우선 사항이 ‘재력’은 아닙니다. 하지만 금전적 부담 때문에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 MZ 세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부를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의 모습은 이런 젊은 세대의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력이 없어 연애하지 못하는 이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재력 연애’ 키워드를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솔로’에서 이런 ‘재력 연애’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현실 연애를 표방하는 프로그램 특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 ‘나는 솔로’의 콘셉트인데요. ‘커플들이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환승연애’나 ‘커플이 되어야만 나갈 수 있는 섬에서 펼쳐지는 솔로들의 화끈한 데이트’를 표방하는 ‘솔로지옥’과는 비교됩니다.
배우자를 찾으러 나온 출연자들이 재력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모습은, 상대를 따지기 이전 일단 자신에게 돈이 있어야 연애나 결혼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더욱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부를 과시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부작용을 낳곤 합니다. ‘나는 솔로’ 10기 출연자였던 ‘50억 리치 언니’가 대표적입니다.
방송 중 “대구에 집을 5채 보유 중이다”, “대략적 자산은 50억 원 이상이다” 등의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10기 정숙에게는 ‘리치(rich) 언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방송 이후 모르는 이들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SNS 메시지를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받는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부모님 수술비, 남편 빚 등의 이유를 대는 사람들에게 “남한테 돈 부탁하지 말고 일자리 알아봐서 일할 생각을 해”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죠.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출연자도, 방송 프로그램도 ‘진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