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올빼미’로 다시 관객에게 손길을 내민 그를 지난 15일 서울 종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선배 배우 유해진과 호흡을 맞춘 스릴러 사극 ‘올빼미’에서 최초로 장애 연기를 하게 된 소감을 전하던 그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가짐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극 중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볼 수 있는 주맹증 침술사 경수 역할을 맡은 그는 “먼 친척 중에 눈이 안 보이는 분이 있다"면서 "어릴 때 그분의 눈을 보고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점을 명확히 두지 않으니까 (예상외로) 눈에 깨끗함과 맑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연기에 반영하려 했던 느낌을 전했다.
또 “주맹증 환자를 실제로 인터뷰했다”면서 “음식점에서 반찬을 너무 잘 짚으셔서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거라는) 편견이 완전히 깨지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우연한 계기로 궁 내에 들어간 경수는 삼전도의 굴욕 이후 권력에 극심하게 집착하게 된 인조(유해진)와 그의 아들 소현세자(김성철) 사이에 벌어진 중요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밤에는 볼 수 있다는 설정 덕분이지만, 거기에는 ‘본다’는 행위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까지 담겼다고 했다.
“엔딩에서 경수가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우리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해요. 비록 어떤 결과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목숨을 내어놓고) 내 입으로 무언가를 내뱉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걸 보여준다면 관객이 공감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지난 10일 언론에 이 같은 내용의 ‘올빼미’를 처음 공개하던 날, 그는 곁에 자리한 선배 배우 유해진에게서 “굵은 기둥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는 칭찬을 듣다가 울컥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을 두고 “게으른 배우”, “주로 관객이 ‘어디서 본 애’처럼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만 연기한 배우”라고 낮춰 표현했지만, 속내에는 연기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담고 있는 듯했다.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 ‘이런 역할을 하겠다’, ‘이런 영화를 하겠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연극영화과를 나왔으니까, 연기를 배운 거죠.”
거기에는 ‘순리대로 살라’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다른 집이 빚지면서 사업을 확장할 때, 우리 집은 늘 적당히 부족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아껴서 살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어요. 이런저런 작품에 나오면서 적당히 벌어 가족들과 먹고살 만한 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계속 상상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니까… 문득 내가 왜 여기 있지? 싶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는 유해진의 칭찬을 두고 “그동안은 좀 휘청휘청하고 얄팍했다면, 작품을 하나하나 해 나가며 부침을 겪고 조금씩 굵어지고 있다는 말씀일 것”이라면서 “이제 시작이다, 많이 굵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류준열은 ‘올빼미’ 개봉 행사를 치르는 요즘 한재림 감독의 신작 드라마 ‘머니게임’을 촬영하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을 두루 경험한 그는 “이제는 주어진 일을 계속해서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것 같다”는 희망도 품게 됐다고 한다.
대중의 꾸준한 관심을 받는 삶에 조금은 익숙해진 듯, 생각의 변화도 전했다. “예전에는 제가 한 행동을 두고 ‘그게 나지 뭐’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자주 ‘아, 그 행동은 좀 어렸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지금이라도 잘못한 걸 알아서 다행이라고요.”
역할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로서 ‘철드는 일’이 두렵지 않냐는 연이은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드는 철을 억지로 안 들려고 하면 그것도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답하면서 “너무 고리타분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천천히 완급조절을 하면서 철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