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선 빅4 회계법인보다 유명
“‘적당히 고급지다.’ 이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너무 깊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회계법인 마일스톤 사옥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양제경 회계법인 마일스톤 대표 회계사는 이처럼 자사 유튜브 채널을 소개했다. 양 회계사는 권순환 부대표, 김규현 주식회사 엠엠피 대표와 함께 ‘양김권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엠엠피는 중소기업 딜 어드바이저리(Deal Advisory) 특화를 목적으로 회계법인 마일스톤에서 분사했다. 회계사라는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재미까지 놓치지 않아 입소문을 탄 ‘양김권 TV’의 구독자는 이달 17일 기준 약 1만5000명으로, 구독자 수로 따지면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보다 위다.
2010년 안진회계법인 동기로 만난 세 사람은 퇴사하면서 잠시 헤어졌다가 2016년 마일스톤으로 다시 만났다. 안진에서 나올 때부터 세 사람의 목표는 독립이었다. 나오자마자 무작정 회사를 세울 순 없었기에 중소형 회계법인에서 ‘작당 모의’를 시작했다. 시장의 생리를 기민하게 터득하고 세 사람만의 새로운 회사를 열기 위해서였다.
김규현 회계사(이하 김)= 양 회계사와 권 회계사가 먼저 안진을 나가서 각각 다른 로컬 법인으로 갔다. 나도 1년 후에 양 회계사와 같은 법인으로 들어갔다. 당시가 2015~2016년인데 그때 기준으로 2~3년 후에 새로운 회사를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권 회계사 덕분에 시간이 단축돼 입사하고 6개월 만에 나와 마일스톤 문을 열게 됐다. 시간 단축은 항상 권 회계사 덕분이다.
권순환 회계사(이하 권)= 우리는 일적으로만 엮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깊이 엮여있다.
이처럼 출발부터 일반 로컬 회계법인과 다른 마일스톤은 사내 분위기도 남다르다. 통상 로컬 회계법인은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독립채산제는 감사팀별 단순 집합체로, 같은 회사라 하더라도 회계사들이 각자 일감을 가져와서 처리하고 수임료 일부를 법인에 내는 방식이다. 이 탓에 팀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마일스톤은 사실상 ‘원펌(One-Firm, 조직화된 펌)’ 체제다.
양제경 회계사(이하 양)= (사명 후보에) OO세무회계사무소가 있었다. 이는 직접 업무 수임 범위를 한정 짓는 거다. 가령 ‘양제경 세무회계사무소’라면 여기에 맡길 일은 이름만 들어도 뻔하다. 단순 세금 신고 같은 거다.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것 같아 다른 이름을 고민했고, ‘마일스톤’이란 이름은 불현듯 떠올랐다.
권= 우리 회사는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인다. 로컬 법인은 이름만 같이 쓰고 각자 따로 생활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회계법인 안에 내 사업부와 양 회계사의 사업부, 김 회계사의 사업부가 따로 운영되는 것이다. 규모가 커도 구성은 쪼개져 있어 전체적인 의견 합치도 어렵다. 우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쪼개져서 움직일 일은 없다. 그런 부분 때문에 남들이 못 하는 걸 할 수도 있고 시너지가 상당하다.
양= 원펌의 장점은 큰 프로젝트를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도 그것 중 하나다. 우리의 슬로건은 ‘사업의 시작부터 정점까지’다. 고객군도 1인 기업부터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 수백억 원대로 매각하려는 회사까지 다양하다. (같이 일한) 고객사가 ‘마일스톤은 정말 특이한 것 같다’고 평가한 적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모든 범위의 고객군을 가진 게 우리의 강점이다. 빅펌(대형 회계법인)은 누가 봐도 아는, 기업의 정점에 있는 회사만 맡는다. 반면 일반 사무소는 사업의 시작에 있는 고객군만 다룬다. 우리는 이 모두를 아우른다.
권= 기장 대리, 세금 신고 등 사업의 시작은 내가 담당한다. 중간 포지션은 양 회계사가 담당하며 기업의 정점인 매각은 김 회계사가 담당한다.
양= 하나의 기업이 커지는 과정을 옆에서 몇 년 동안 지켜보니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다른 회계법인과 다르다.
마일스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 ‘양김권 TV’다. △오늘부터 회계사 △회계유치원 △CEO훈련소 등 다채로운 코너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콘텐츠는 ‘오늘부터 회계사’다. 오늘부터 회계사는 특정 기업의 재무제표를 비회계 종사자도 알기 쉽게 풀이하는 콘텐츠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의 손익계산서를 분석하면서 빅맥의 원가도 추정하는 것이다. 지난 8월 업로드된 ‘빅맥의 원가는 얼마일까? 한국 맥도날드 재무제표 분석’에서 양김권 TV는 맥도날드의 손익계산서로 식품매출과 식품매출원가의 계정이 어떤 걸 뜻하는지 각각 설명한 후 식품매출 중 식품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 빅맥의 원가를 가늠했다.
양= 2020년 초 김 회계사가 호주로 여행을 갔다 오더니 콘텐츠를 홍보를 해야 된다고 하더라. 알고보니 김 회계사가 여행하며 들고 간 책이 ‘콘텐츠로 창업하라’였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김= (유튜브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하곤 했는데 아쉬움이 있었다. 유튜브는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추억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권= 유튜브를 시작하는 데 이견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 사람은 유튜브에 점차 진심이 됐다. 영상을 보는 이가 하나라도 새로운 지식을 얻어갈 수 있게 정보를 담으려고 애썼다. 그렇다 보니 유튜브 콘텐츠를 준비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들어갈 때도 있었다.
양= 당시에는 영화 대본처럼 대사 하나하나를 다 만들고 외워서 찍었다. 유익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25분 안에 회계, 세무 지식 거리를 드리려고 했다. 상대방이 대사를 쳐야 나도 대사를 하는 구조라서 NG가 난 적도 있었다. 내부에서도 ‘너무 읽는다, 재미가 이전보다 떨어진다’라는 평이 있었다. 모르는 내용은 아니니 머릿속에 있는 걸 편하게 말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김= (완벽하게 대본을 짜고 숙지한 후에) 했을 때 내용은 더 좋을 수 있겠으나, 어느 순간 그 대본을 읽고 말하게 되더라. 그래서 ‘원래 알던 내용으로 얘기하자’고 했고, 지금은 촬영을 올 때마다 와서 (회계로) 노는 기분이다.
권= 힘을 빼자고 한 순간이 있었다.
양=‘얘기 한다’라고 생각하면 편하게 멘트도 칠 수 있다. 회계 채널이다 보니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기업 분석과 인수합병(M&A), 세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분석할 기업을 선택하는 건 세 사람의 취향이 담겨있다.
양= 유튜브는 철저하게 B2C 시장이다. 어찌 보면 개인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인데, 누구나 들어본 회사를 하려고 한다. 또 그 안에서 얘기할 거리가 있는 회사들을 한다. 당근마켓과 맥도날드가 대표적이다.
김= 제 관심사는 M&A다. 모 회사가 매각됐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런 사례를 분석하기도 한다.
세 회계사는 유튜브 콘텐츠 때문에 친정인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오피스 투어 초대를 받았다. 지난 6월 업로드된 브이로그 덕분이다. 당시 양김권 TV는 ‘여의도 옛 직장 갔다 쫓겨난 썰 푼다’라는 영상으로 안진회계법인 건물에 들어갔다가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다시 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에 안진회계법인은 “다음에 올 때 연락 달라”는 댓글을 달았고, 지난달 양김권 TV는 ‘안진회계법인 오피스 투어(퇴사했는데 초대받은 회계사가 있다?)’ 영상을 게시했다.
권= (안진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간다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사돼서 좋았다. 들어가면서 옛 생각도 많이 났다.
김= (초대받을 당시) 뿌듯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아직은 우리가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재무제표를 분석하지만, 양김권 TV는 주식 투자자를 위한 채널은 아니다. 올해 초 출판사에서 초보 주식 투자자를 위한 책을 내자는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세 사람은 회계 기준이 변하면서 점차 회계가 어려워진다는 공통 문제의식이 있었다. 여기에 ‘재미를 더하자’고 생각했다.
권= 요즘 회계가 너무 어려워져 전문가도 해석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비전문가는 그게 더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시장 참여자들이 인사이트를 얻고자 할 때 보는 건 감사보고서인데, 그걸 끝까지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보고서가 누굴 위한 건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있었다.
양= 투자 목적의 시청자라면 저희 채널은 맞지 않는다. (우리의 분석은) 주식 투자자를 위한 분석이 아니다. 우리 채널은 투자 목적 상관없이 ‘이런 게 있다더라’하고 보는 게 맞다.
김= 우리 채널이 투자자를 위해 만들어졌다면 구독자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피곤했을 거다. 우리는 구독자를 많이 모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유튜브를 통해 ‘마일스톤’을 알게돼 찾아온 고객도 있다. 일부러 이들을 찾은 고객들은 ‘영상을 보니 신뢰가 간다’고 입을 모았다. 딱딱한 회계를 말랑한 언어로 설명하는 ‘양김권 TV’가 통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 회계사는 "전문 지식을 제공하면 결국 고객이 알아볼 것이라는 걸 믿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