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한국 시각)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올렸습니다. 월드컵 공인구 ‘알릴라’는 푸른 그라운드를 누비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환호를 자아내는 중입니다.
이날 카타르와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는 킥오프 3분 만에 에콰도르의 선제골이 터졌는데요. 해당 골은 인정되지 않으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공인구 알릴라의 센서와 FIFA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이 눈으로는 잡아내기 힘든 오프사이드를 판독해냈기 때문이죠. 경기장 전광판에 떠오른 마이클 에스트라다(에콰도르)의 발끝 등 신체는 카타르 수비수보다 미세하게 앞서 있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공인구 알릴라(Al Rihla)는 아랍어로 ‘여정’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역대 14번째 월드컵 공인구인 알릴라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공인구를 제작해온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의 제품이죠.
아디다스는 올 상반기 일찌감치 알릴라를 공개했습니다. 알릴라의 색상과 패턴은 카타르 문화와 건축, 국기 등에서 영향을 받았는데요. 미래 지향적인 카타르의 스타디움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 요소와 카타르의 전통 진주를 형상화한 무지개 색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작 방식도 환경친화적입니다. 알릴라의 소재는 폐기물입니다. 제작 단계에 쓰이는 잉크와 접착제도 수성으로 사용해 친환경성을 높였습니다.
아디다스는 최상 수준의 정확도와 속도를 알릴라에 도입했습니다. 특히 ‘스피드쉘’(Speedshell) 패널 구조가 새롭게 적용됐습니다. 20개의 패널을 통해 공기역학을 향상, 흔들림을 줄이고 공의 비행과 회전 속도를 높였다는 게 아디다스 측의 설명입니다.
또 알릴라 내부에는 관성측정센서(IMU)가 내장됐는데요. 이 센서 덕분에 알릴라는 초당 500회 빈도로 움직임을 비디오판독(VAR)실로 전송합니다. 이와 함께 FIFA가 3년의 개발 끝에 선보인 경기장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로 정확한 판정이 내려집니다.
사실 공인구는 월드컵 개최 때마다 축구 팬들이 관심 두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4년 주기로 개최되는 월드컵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직접 사용하는 제품으로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월드컵 출범과 동시에 공인구가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1930년 초대 대회인 우루과이 월드컵이 시작되고 40년이 지나서야 공인구가 사용됐습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개최국의 스포츠용품 업체가 제작한 축구공을 썼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마다 공의 크기나 재질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우루과이 월드컵 당시 결승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어떤 나라의 공을 쓸 것인지를 두고 격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전·후반을 나눠 자신들의 축구공을 사용했죠.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의 티엔토가, 후반전엔 우루과이의 티-모델이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반에는 아르헨티나가 2-1로 경기를 리드하다가, 후반에 공이 바뀌면서 우루과이가 3골을 몰아넣고 4-2 역전승을 거뒀다는 사실입니다. 대표팀에게 익숙한 축구공이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주는 셈입니다.
오는 24일(한국 시각) 한국과 맞붙는 우루과이 대표팀 골키퍼 세르히오 로체트도 우루과이 매체를 통해 공인구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공(알릴라)은 매우 빠른 편”이라며 “(공의 속도 향상이) 공격수들에겐 더 좋겠지만, 우리 골키퍼들에겐 더 어렵게 다가온다. 경기장 잔디도 젖어 있어 경기가 복잡해질 수 있다. 적응하는 중”이라고 밝혔죠.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는 아디다스가 월드컵 공인구를 독점 제작하며 축구공에 최신 기술 및 월드컵 개최국의 특징을 반영했습니다.
역대 월드컵 공인구는 1970년 멕시코 ‘텔스타’, 1978년 아르헨티나 ‘탱고’, 1990년 이탈리아 ‘에트루스카’, 1994 미국 ‘퀘스트라’, 1998년 프랑스 ‘트리콜로’, 2002 한국·일본 ‘피버노바’, 2006 독일 ‘팀가이스트’,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자블라니’, 2014 브라질 ‘브라주카’, 2018 러시아 ‘텔스타18’ 순으로 이어집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사용된 피버노바(Fevernova)는 기존 축구공이 고수하던 ‘탱고’ 디자인에서 벗어나 4개의 바람개비 무늬를 넣은 게 특징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팀가이스트(Teamgeist)는 기존 32개에서 14개로 패널이 줄었고, 겉 부분도 정다각형에서 곡형으로 바뀌는 등 기하학적 도약을 꾀했습니다. 꼭짓점이 없어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를 깼다는 평을 받기도 하죠.
이후 공인구는 자블라니(8조각), 브라주카(6조각), 텔스타18(6조각)로 진화했습니다. 점차 이음새가 줄어들며 축구공은 ‘완벽한 구’에 가까워졌고, 반응이 일정해지며 패스·슈팅·드리블에서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모든 공인구가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는 일관성이 떨어져 ‘차는 사람도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싸구려 탱탱볼’ 등의 혹평을 들어야 했죠.
이처럼 월드컵 공인구는 전 세계 축구인들의 관심 속에서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FIFA는 알릴라를 두고 ‘역대 월드컵 공인구 중 가장 빠르게 날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릴라는 월드컵 역사에 어떤 공으로 기록될까요? 알릴라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보여줄 여정에 기대가 높아집니다.